로버트 김-백동일 10년來 상봉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니 기쁘고 감사합니다”(백동일 예비역 대령) “이제는 앞만 보고 갑시다” (로버트 김)

미 해군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한국에 관한 정보를 빼낸 혐의로 10년을 영어의 몸으로 지낸 로버트 김과 미 해군무관을 지내며 조국을 위해 정보활동을 벌이다 결국 한직으로 밀려나 대령으로 예편한 백동일씨.

조국에 대한 사랑의 대가로 성공 가도를 걷던 자신의 생활이 무너지고 긴 세월을 고통과 회한 속에서 지냈던 두 노장이 10년만에 상봉했다.

6일 오후 5시15분께 부인과 함께 입국장으로 들어선 로버트 김은 꽃다발을 들고있는 백씨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길고 굳은 포옹을 했다.

백씨는 로버트 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고 로버트 김은 그런 백씨를 다독였다. 10년만의 만남이었다.

로버트 김과 백씨가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인 1995년 11월. 당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해군정보교류회의에서 두 사람은 각각 미 해군정보군측 통역자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자격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한미관계는 북한 핵문제와 동해안 북한 잠수정 좌초 사건 등으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었고 그만큼 한국으로서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서로의 애국심을 확인하면서 로버트 김은 업무상 접하는 북한 관련 정보를 백씨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로버트 김이 건넨 정보는 비밀로 취급되기는 했지만 미국 안보에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 프랑스 등 타국에는 이미 제공된 것들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감시받게 됐다.

결국 1996년 9월 24일 워싱턴 미군기지에서 열린 한국대사관 무관부 주최 ‘국군의 날’ 리셉션에 백씨의 초청으로 참석했던 로버트 김은 백씨 눈앞에서 FBI 요원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정부는 “이 사건은 미국시민의 신분으로 미국법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대사관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백 씨는 곧이어 한국으로 소환됐다.

귀국한 백씨는 로버트 김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월급을 모아 변호사 비용으로 보내는 등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로버트 김은 징역 108개월과 보호관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때 전도유망한 해군대령이었던 백씨도 한직을 떠돌다 진급도 못한 채 예편했고, 조국을 위해 그에게 정보를 건넸던 로버트 김은 한국정부로부터 “미국시민의 일”이라며 외면당하게 된 것이다.

미 정부에 의해 입국이 거부돼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로버트 김을 만날 수 없었던 백씨와 긴 세월 조국에 버림받은 채 외로운 투쟁을 해야 했던 로버트 김.

1년이 채 못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민감하게 얽힌 국가간 갈등의 희생양으로 지난 10년 간 서로 뗄 수 없는 운명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던 이들 두 노장이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회한과 감격의 상봉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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