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에 차인표 등 연예인들이 나섰고,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중국 공안에 구금되는 등 2012년은 북한인권 문제가 국가적 관심사로 불거진 한 해였다.
이처럼 현재 진행형인 북한인권운동의 시급성에 비해 여전히 20~30대 젊은 층을 비롯한 광범위한 대중들의 관심밖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북한인권NGO들이 영화·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각종 전시회를 개최해 관심유도에 나서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최근 영화의 대중성을 활용, ‘북한인권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출품된 영화들이 대중과의 공감에 실패해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정치권 등 특정계층에 한정됐다.
지난달 30일 데일리NK와 만난 곽문완 감독(진인사필름)은 최근 북한인권 관련 영화들의 실패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의 북한인권 관련 영화는 북한인권운동가와 탈북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였다고 지적했다.
감동과 재미를 배제한 채 남한 사회를 향한 단순한 ‘호소’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곽 감독은 “북한인권 문제를 무겁게 그리면 관객은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영화는 즐기기 위해 보는 것인데 그동안의 작품들은 관객들에 ‘재미’라는 배려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북한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 출신의 탈북자다. 2005년 김정일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처벌위기에 처하자 남한으로 탈출했다. 이후 그는 북한인권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에 재미와 상업성을 가미시킬 방법을 고민해왔다.
최근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해당화(가제)’는 곽 감독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당화’는 2010년 남한 네티즌 사이에서 배우 김태희 닮은꼴로 주목을 받은 캄보디아 북한랭면관 여종업원을 소재로 쓰였다.
곽 감독은 “남한의 속칭 연애 고수들이 ‘북한 김태희 꼬시기’를 내기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러브스토리를 그렸다”고 말했다. 현재 투자유치를 물색하고 있는 ‘해당화’가 크랭크인돼 감독의 말처럼 북한인권운동의 대중화와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곽 감독은 2005년부터 8년 여 동안 곽경택 감독의 스태프로 참여, 감독으로서 역량을 키웠다. 영화 태풍(2005), 사랑(2007),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 통증(2011), 미운오리새끼(2012)와 드라마 ‘친구-우리들의 전설(2009)’ 등의 제작·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곽경택 감독과는 ‘곽문완’이라는 이름을 받았을 정도로 각별하다. 그는 “남한에서 영화인으로서 자리 잡는데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다음은 곽문완 감독 인터뷰 전문.
-평양연극연화대학 영화연출학과를 나왔다. 북한에서도 영화제작 활동을 했었나.
“여러 작품을 만들었지만 북한 당국의 검열이 심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포기했다. 한 번은 영화를 완성했는데 당국이 8회에 걸쳐 검열을 하는 것을 보고 ‘이곳은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고, 영화계로 진출하는 것을 포기했다.”
-북한은 사상통제가 심한 나라인 만큼 영화제작 기준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스케일이 크고 돈이 많이 소요된 영화라도 전쟁에 염증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면 폐기된다. 정치·사상적으로 체제에 반하는 내용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민족과 운명'(1992~2002, 북한 지도부를 우상화한 영화)이라는 다부작 영화의 ‘강훈편’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의 대전함락전(戰)을 그린 것인데 1개 사단이 동원됐고, 평양 시내에 대전시 세트를 세워 만든 영화였다.
당시 카메라 30대가 동원돼 대전폭파 장면을 공중·지상에서 동시 촬영했다. 많은 돈과 인력이 투여됐지만 그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바람에 김정일이 폐기지시를 했다. 참혹성이 강조되면 북한 주민들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이에 염증을 느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전쟁 영화는 ‘참혹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영화 ‘월미도'(1982)는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북한 해군포병 한개 중대가 미군함대의 인천상륙작전을 지연시키는 내용인데 시청자로 하여금 전쟁에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김정일이 매우 좋아했다.”
-남한에서 어떻게 영화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나.
“북한에서 배운 것이 영화일밖에 없어서 남한 입국이후 관련 일을 찾으러 다니다가 곽경택 감독이 영화 ‘태풍’ 제작 스텝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면접에서 곽 감독에게 ‘북한에서 영화 친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곽 감독의 아버지도 평양 근처 남포 출신이고,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도 ‘친구’라서 그랬는지, 곽 감독이 그때 나를 잘 평가해준 것 같다.”
-곽경택 감독과의 관계는 어떤가.
“아버지이자, 친형 같은 존재이다. 곽 감독의 도움은 내가 영화인으로 성장하는데 많은 힘이 됐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곽문완’이라는 이름도 북한에 있는 곽경택 감독 삼촌의 성함이다. 곽 감독이 그의 아버지에게 특별히 부탁해 ‘곽문완’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곽 감독에게 영화 전반에 대한 것을 배우고 또 익혔다. ‘태풍(2005)’ ‘사랑(2007)’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 ‘통증(2011)’ ‘미운오리새끼(2012)’ ‘친구-우리들의 전설(2009)’ 등 다양한 작품에서 곽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감독 데뷔작은 준비하고 있나.
“‘해당화'(가제)라는 작품이다. 2010년 인터넷에서 캄보디아 북한랭면관의 여종업원이 이슈로 부각된 적이 있는데 이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다. 남한의 ‘연애꾼’들이 ‘북한 김태희 유혹하기’를 내기로 걸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남북 간 문화적 이질감·민족적 동질감을 그릴 예정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은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이지만, 전체의 30% 정도는 남북의 분단 현실이나 북한인권 등의 내용을 넣을 예정이다.”
-영화 제작 준비과정은 어떤가.
“메인 배급사 쪽의 투자결정을 받아야하는 상황이다. 이제 막 시나리오작업을 마친 상태이며 몇몇 배우들에 출연제의를 한 상태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차태현 씨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아줬으면 한다. 여자 주인공은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특성상 노래와 춤에 능해야하기 때문에, 발랄하고 상큼한 이미지의 아이돌로 구상하고 있다.”
-그동안 왜 북한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실패했다고 보나.
“북한인권 관련 영화는 탈북자들만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남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영화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즐기기 위해 찾는 것인데 북한인권 영화들은 이러한 점을 배려하지 않았다. 북한인권이라는 소재를 재미와 감동·흥미라는 종이에 포장하는 작업이 없었다. 물론 북한인권이라는 소재 자체가 재미·흥미와는 거리가 먼 측면도 있다.”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남과 북 영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원코리아(OneKorea)’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싶다. 탈북자들의 정착과정, 그들이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 등을 남한 사회에 알리는데 미디어 매체를 이용하는 것처럼 쉬운 방법은 없다. 이 같은 회사를 설립하면 북한 실상·인권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