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 향수(鄕愁)와 김일성 우상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이후 살기가 무척 힘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 정권을 ‘파쇼독재’로 여기는 사람도 ‘김일성만 살아 있었더라면 잘 살 수 있다고 진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체제의 몰락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그리 놀랍게만 보이지 않는다. 1985년 소련에서 국영 사회주의의 붕괴를 초래한 개혁이 처음 시작했을 때, 소련 사람 중에 사회주의 체제를 완전히 거부했던 사람은 사실 극소수뿐이었다. 그 당시 소련 사람 대부분이 바람직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개량된 사회주의’였다.

레닌에 대한 ‘향수’는 소련 사회 본질 은폐

1980년대에 들어와서 소련 사람들, 특히 소련 지식인들은 ‘레닌의 신화’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이 신화에 의해 레닌이 건설한 소련 사회주의 체제는 1930-50년대 스탈린 독재로 인해 왜곡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사회는 국민이 자유롭고 풍족한 사회로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소련 초기개혁 시기인 1985-87년에는 ‘레닌으로 돌아가자!’란 구호가 반복되었다. 소련 사람들은 소련의 ‘레닌주의 복귀’가 사회주의 광복을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레닌시대에 대한 ‘이상화(理想化) 현상’은 역사적 지식의 부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국영매체는 1920년대부터 소련 사회의 창시자인 레닌과 그의 시대를 이상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레닌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는 증거는 무조건 은폐했다.

레닌 이상화 현상의 또 하나의 이유는 세계관의 문제이다.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의견과 세계관을 바꾸기도 한다. 좌익에서 우익으로, 우익에서 좌익으로,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인에서 무신론자로 변화하는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180도로 바꾸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자신의 신념이자, 삶을 바라보는 근본 관점은 쉽사리 바뀌기 어렵다.

北 수령우상화의 몰락은?

어린 시절부터 레닌을 지혜의 화신으로 여기고, 사회주의는 우월한 사회 체제라는 교육을 받았던 구소련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소련 체제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잘못은 레닌의 유산인 ‘진짜 사회주의’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하게 된다. 사상 통제가 약해짐에 따라 소련 지식인들은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던 사실들을 점차 알게 되었다. 또 반체제 세력은 소련의 현재와 과거를 보다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때부터 레닌의 ‘혁명의 잔인성’,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하나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1990년을 전후해, 레닌에 대한 순진한 신화도,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도 붕괴했다. 소련 사람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모든 희망을 걸게 되었다. 이후 이 이념에 대해서도 실망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는 않지만 레닌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도 일반 주민들이 김일성을 ‘이상화’하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치원 시절 때부터 ‘위대한 수령, 어버이 수령’이나 ‘모범사회주의’란 말만 들으며, 김일성 정책의 본질에 대한 사실은 완전히 모른 채 자란 사람들이 갑자기 김일성이나 주체형 사회주의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사회의 여러 잘못들을 ‘이 체제의 왜곡’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되며, 이것이 반체제의 의식으로 발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소련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 이 과정이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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