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민족주의자들 “세계 패권국가, 美 아니라 러시아 돼야”

1960년대 초에 재생된 러시아 민족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이전 민족주의와 달리 제국을 부담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인물들은 소수민족 지역에 제공하는 후원과 특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러시아가 소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사람 대부분은 소련의 완전한 해체를 상상하지 않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그리고 슬라브 인구가 50%를 초과했던 카자흐스탄을 묶어서 국가를 유지하고 다른 공화국은 물러나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를 다른 정체성을 가진 나라로 보지 않고 러시아 지역으로 보았다. 또 그들의 언어가 진짜 러시아 말은 아니지만 “폴란드 영향 때문에 좀 나빠진 러시아 방언” 쯤으로 여겼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잘 대표하는 사람이 노벨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이었다.

그러나 1991년, 역사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 연방국가가 완전히 붕괴되어 러시아는 250년에 걸쳐 늘여놓은 국토를 하루 아침에 버렸지만 독립국가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정치에서 민족주의는 주변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소련 붕괴 직후 소련 사람 대부분의 희망과 기대는 공산주의 체제와 “기생적인” 소수민족의 부담에서 벗어난 나라가 짧은 기간 동안 미국이나 유럽 생활 수준을 능가할 뿐 아니라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체제붕괴가 초래한 경제위기 때문에 생활의 질도 많이 떨어지고 러시아의 국제 영향력도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민주 자본주의 그리고 서양에 대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 실망은 외부 세계에 대한 배타성과 적대감을 야기하였다.

러시아 민족주의 강화 3가지 이유

민족주의는 자신의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민족과 비교해야 한다. 그래서 탈소련 시대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미워하고 싶은 세력은 주로 세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선진국, 또 하나는 새로 독립된 구소련 가맹 공화국, 또 하나는 러시아로 이민해 온 외국인들이었다.

증오의 대상 가운데 미국은 중요하다. 소련 시대 때 계속된 반미 선전이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국민에서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소련 사람들은 미국을 적대국가보다 부러움의 대상인 부자 국가로 여기고 미국의 생활, 그 정치와 문화를 이념화한 편이었다.

1990년을 전후하여 구소련 사람들은 미국이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러시아에 큰 지원을 제공해줄 것이고, 러시아를 미국처럼 초강대국으로 계속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련 붕괴 시기에 구소련만큼 친미 사상이 강한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심한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서방의 지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기를 이용해서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자연스러운 영향권”으로 여기는 지역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고 했다.

그 “러시아 영향권”은 구소련 공화국이나 위성 국가였다.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감이 컸다. 또 미국이나 다른 서방 선진국들을 러시아의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세력으로 보고, 미국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외교이지만 러시아는 이러한 행위를 러시아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미국이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언론뿐 아니라 일반 사람 대부분이 미국을 “양심도 없는 나라” “살인자들의 나라” “문화가 없는 나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겉으로 한국의 반미좌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좀더 자세하게 분석하면 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남한 민족주의 세력은 반미가 미국의 패권에 의한 국제관계 구조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러시아의 경우, 미국을 비판하는 세력은 국제관계에서 패권의 원칙을 노골적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패권국가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분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의 독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1920년대 독일에서 수많은 국민들은 대공황이 가져온 빈곤과 공생 속에서 제1차 대전의 패전이 배신자들의 음모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보고 독일의 제국주의를 재생함으로써 민족의 명예와 국민들의 풍요를 복구하려고 시도했다.

두 번째 적대감의 대상은 새로 독립한 구소련 가맹 공화국들이다.

독립을 얻은 이들 국가들은 민족주의를 새 국가건설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살아온 러시아 사람들을 비롯한 ‘외부 민족들’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비록 강제 이주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차별과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피난민처럼 러시아로 돌아왔다. 물론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이들 독립국가에 대한 복수와 “러시아인들의 보호”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을 더욱 악화시킨 요인은 구소련 시대부터 남아 있던 비러시아 지역에 대한 의식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과거 소련 당국은 소수민족 지역이 러시아의 지원을 계속받아야 성장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러시아 사람 대부분은 소수민족들이 러시아 제국주의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 러시아 민족의 자비심과 관대함에 의해서 개발된 지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독립국가들이 러시아를 따라 갈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反러시아 민족주의를 추진하는 것이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배은망덕한 태도로 보인 것이다.

경제 불안이 민족주의 더 부추길 수도

세 번째 중요한 요소가 러시아에 증가하는 이민자들이다.

러시아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지만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돈을 버는 기회가 많다. 모스크바에서 미숙련 근로자의 월급은 300-400 달러 정도이지만 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30달러를 벌기 힘들다. 그래서 구소련 국가 출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취업하려고 한다. 이민자 대부분은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수많은 경우 중소기업, 특히 상업을 하는 이민자들이 있다. 현재 이민자들은 압도적으로 카프카스 산맥이나 중 아시아 출신이지만 중국, 베트남 이민자들도 있다.

이민자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니까 그들에 대한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최근 추정에 의하면 현재 러시아에 체류하는 이민자들은 600~700만 명 정도이다. 전체 러시아 인구의 5% 정도이다.

이민자들의 생활 습관, 가치관, 교육 등은 슬라브계 민족들과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배타감이 적지 않다. 또, 이 이민자들은 러시아 주류사회에 동화할 의지를 별로 보여주지 않고 많은 경우에 범죄활동에 연루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러시아 여자들을 무시하며 중소기업과 시장 활동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인종주의 폭력사건은 압도적으로 이민자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늘어난 깡패들 중 일부는 “백인들의 보호자” “러시아 민족의 보호자”로 자처하면서 슬라브와 닮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물론 이들 깡패 가운데는 히틀러 숭배자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극단 민족주의자들이 이민자들을 보는 태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사실 이민자 대부분이 ‘이민자’가 아니라 러시아 국적을 갖춘 소수민족들이다. 하지만 이들 민족주의 깡패들에게는 인종이 다른 사람이면 국적과 무관하게 ‘적’이다. 때문에 러시아에서 150여 년 전부터 살아 온 고려 사람들은 그들의 공격을 당한 적이 많다. 또 그들이 ‘백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북방유럽 사람들 뿐이다. 인종학적으로 보면 러시아 민족주의 깡패들이 제일 미워하는 카프카스 출신들은 100% 백인들이다. 그래도 러시아 극우인종주의자들은 그들을 ‘유색인종’으로 본다.

러시아 우익인종주의와 극단 민족주의는 나라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볼 근거가 있다.

현재 러시아는 고유가 덕분에 전례없는 소비 붐을 경험하고 있지만 경제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세계 시장에서 유가가 갑자기 떨어지면 러시아 경제가 흔들릴 것 같다.

이러한 위기가 초래할 생활 수준의 급락은 사회적 긴장과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다. 1920년대 독일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민족주의에 빠진 사회가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를 맞이할 경우 더욱 급진적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러시아에 히틀러 같은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지만 민족주의에 의해 초래될 폭력과 갈등, 국내 혼란 그리고 비합리주의적인 외교 행위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지만 현대 러시아의 사회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앞으로 러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약화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러시아 주변 국가들은 대외정책을 계획할 때 러시아 민족주의 위협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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