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제재 결의안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요구한 것은 대북 영향력 확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공조 움직임에 물타기를 진행하면서 북한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레버리지를 확보하겠다는 것.
또한 러시아의 ‘시간 끌기’가 대북 제재에 구체적인 내용을 문제 삼으려는 목적보다는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례로 러시아는 그동안 강력한 대북 제재 도출 가능성에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최근에서야 “세부 사항이 많아 시간이 부족하다” “자국 내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발목잡기에 나섰다.
때문에 대북 제재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소외된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냄과 동시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 같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유영철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29일 데일리NK에 “러시아 입장에서 (결의안 초안이) 미국과 중국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불만일 것”이라면서 “이번에 검토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은 불만 표출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분석했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도 “외교적 대응 수단으로 봐야 한다.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려는 것”이라면서 “미중 양국이 합의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국제사회의 암묵적 합의에 제동을 걸고 존재감을 부각시켜 향후 6자 회담 등에서도 입김을 키우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진(西進)이 막힌 러시아의 입장에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갑작스런 러시아의 ‘시간끌기’로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의 신속 처리가 지연되고 있지만, 조만간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안보리 소집일 시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러시아가 일부 제재 내용을 문제 삼고 나올 경우 안보리 채택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러시아도 이의가 없기 때문.
유 연구위원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러시아 정부 측에서 이미 제재안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일부 수정 요구가 있을 수 있지만) 강력 제재의 큰 틀을 거스르는 무리한 내용 수정은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빠른 시간 내에 제재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그동안 북한을 다소 옹호했던 중국도 강력한 대북 제제에 동조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 말썽꾸러기 김정은을 편드는 건 국제적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도 쉽게 선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