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강한 국가’ 열망, 푸틴 독재로 이어지나

러시아가 푸틴(사진) 1인독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푸틴의 독재권력 구축 가능성 때문이다. 러시아는 대통령을 두 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푸틴은 두 번째 연임에 성공했으며 내년 3월 새로운 대통령 선거까지 임기를 마감하고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푸틴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푸틴은 현재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놀라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런 여세로 푸틴이 헌법 개정을 시도해 3선 연임을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치러진 러시아 총선이 관심을 집중시킨 것도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12월2일 실시된 총선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압승했다.

통합러시아당이 64%를 득표했으며 공산당이 11.6%, 친여 성향의 자유민주당과 정의러시아당이 각각 8.7%와 7.8%를 득표했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친여 성향의 야당과 협력한다면 이미 80%를 넘기게 된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총선 결과에 비판적이다. 부정선거로 얼룩졌다는 것이다. 선거운동과정에서 야당 탄압과 당국의 선거개입, 언론의 편파 보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공산당을 비롯한 야권은 개표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법정 투쟁과 함께 전국적 시위로 저항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이번 선거를 두고 푸틴의 승리라기보다 그 주변의 정보기관과 군부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만큼 권력기구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 노골적으로 진행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정선거 의혹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국민들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혼란과 어려움을 거듭하던 러시아가 푸틴의 집권과 함께 안정을 찾았다.

특히 높은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형편을 크게 개선시켰다. 푸틴은 강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통치했으며 ‘강한 러시아’를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자극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각을 세우는 것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구 소비에트 붕괴 이후의 정신적 상실감을 보상하려고 했다. 국민들은 강한 러시아를 만들어 준 푸틴에 열광했다. 심지어는 ‘국부’로 추앙하려는 움직임마저 펼쳐지고 있다.

푸틴에 대한 과잉된 열광 때문에 자칫 과거 전체주의로 회귀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푸틴에 대한 절대적 신임은 자칫 민주주의를 질식할 정도로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 지식인들의 우려이다. 과거에 대한 공허한 향수가 새로이 직면한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유능한 ‘독재자’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2선 연임 제한에 묶인 푸틴이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의 장래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어 푸틴의 행보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푸틴은 대통령으로서 통합러시아당의 1번 비례대표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였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러시아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포석이다.

푸틴이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 헌법을 개정해 3선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의 의석 확보와 현재의 국민적 지지로 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푸틴은 총선에 임하면서 3선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또한 차기 대선 후보 등록이 20여일 앞으로 바짝 다가온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으며 무리수를 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푸틴이 대통령을 하지 않는다고 권력을 연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안이 총리에 지명되는 것이다. 푸틴은 유약한 후계자를 내세워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은 뒤 자신이 총리에 앉음으로써 총리 중심 체제로 국가를 운영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리도 없으며 당내 확고한 입지는 물론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푸틴으로서는 못 이기는 척 하며 권력을 연장할 수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다음 대통령 자리는 후계자에게 내어 주고 헌법을 그대로 둔 채 그 다음 대통령에 다시 등극하는 것이다. 이것은 연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푸틴은 그 이후 다시 또 2선 연임을 노릴 수 있다. 푸틴은 현재 55세로 앞으로도 15년은 국가운영에 큰 무리가 없다.

푸틴은 러시아에 쏟아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러시아식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무시하고 있다.

푸틴은 2005년 선거법을 개정해 450명의 하원 의원 중 절반을 직접 선거로 뽑던 이전 방식에서 전원 비례대표로 뽑는 독특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푸틴은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야권은 조직과 돈이 없는 재야 정당의 비판적 목소리를 고사시키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푸틴은 최근 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진행된 반정부 시위 당시에는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을 구속하였다.

‘강한 국가’의 열망 속에서 ‘강한 통치’에 따른 새로운 ‘일당․일인 지배체제’가 출현하고 있는 러시아, 과연 푸틴 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러시아에 희망이 될지 족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