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의 북한 생각 ‘어제와 오늘’

러시아는 북한 현대사에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은 건국 시절부터 소련의 감독 하에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명을 정한 것도 소련 붉은 군대의 소장이자 북조선 정치사령관이었던 니콜라이 레베데프였다. 


북한은  6.25전쟁과 국가 재건 과정에서도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비밀 해제된 소련 비밀문건을 보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전쟁을 허가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필자가 만나본 많은 한국 사람들은 과거와 같지 않더라도 러시아가 북한과 특수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친북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양국의 관계와 러시아인의 대북 인식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1960년대엔 ‘美日 침략의 희생국’이라는 시각이 강했다. 소련 당국은 해방된 북한에 대해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상태를 ‘영웅적인 소련군’이 해방시켰다고 선전했다. 1950년대는 미제와 그의 주구인 이승만으로부터 피해를 많이 받은 나라이라고 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이 많이 범죄를 지은 것이 사실이었다. 미국 군대가 전쟁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도 있었다. 소련은 일본과 미국의 범죄를 엄청나게 과장하였고, 멸공통일을 내세운 이승만을 ‘조선전쟁의 침략자’로 그렸다. 소련 국민들은 이 사실을 대부분 믿었다.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자 김일성은 노동당의 소련파(허가이 등)를 숙청시켜 북-소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러나 소련 매체들은 이에 대한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이어온 조선-소련 우정을 계속 강조하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소련에서 북한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바뀐 것은 굉장히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주체사상을 세계적인 사상으로 치켜세우며 외국에 주체사상 관련 선전물을 배포했다. 관련 서적 출판도 이어졌다. 소련에서는 이 가운데 ‘조선’과 ‘오늘의 조선’이라는 책자가 유명했다.


‘조선’ 책자에는 김일성의 위대성과 그의 불후의 업적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조선 인민들은 수령복를 타고 났다는 말을 했다. 일반 소련 주민들은 김일성 찬양을 소련 선전, 특히 스탈린 시대의 유령으로 받아들였다. 스탈린을 패러디한 것쯤으로 본 것이다.


실제 김일성 숭배는 1960년대 소련 공산당은 물론, 스탈린 시대 개인숭배보다 훨씬 심각했다. 가령, 일반 소련 선전문구에는 “스탈린 동지의 지적대로, 언어에 대한 개념은 계급적인 개념이 아니다”라는 수준이었다. 별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다.


만약에 김일성이 똑 같은 말을 했다면, ‘조선’에서는 어떻게 인용했을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습니다.”
“언어에 대한 개념은 계급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김일성에 대한 수식어나 출판물에 나오는 이름 석자를 굵은 활자체로 표시하는 것이 특히 웃겼다. 소련에서 그런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조선’을 번역한 사람 중에 소련인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인지 내용 또한 매우 어색한 러시아 말로 구성됐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의 이미지는 그로테스크(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러운)한 독재로 다가왔다.


이상하고 우스꽝스런 북한 잡지인 ‘조선’을 읽고 싶어하는 소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잡지 예약자수도 늘었다. 괴기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심리도 모른 채 북한 외교관은 “소련 사람들도 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주체사상의 위대성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보도를 평양발로 내보냈다.


북한의 주체사상 및 김일성 선전은 소련 사람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그런 반응을 일으킨다. 지금 와서 보면 남한에서 북한 선전물이나 책자의 출판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이 역설적으로 북한의 괴기스러움을 한국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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