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9.19 직후 북한과 평화협정 구상 입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미 지난 2005년 북핵 6자회담 `9.19 공동선언’이후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구상에 중점을 둔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했으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4일 밝혀졌다.

또 부시 대통령은 작년 4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타진했고 후 주석도 이에 동의, 북한에 사절단을 보내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한 지도부에 전달키로 했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의 글렌 케슬러 기자는 이날 발간한 `측근(The Confidante):콘돌리자 라이스와 부시 행정부의 유산 만들기”라는 저서를 통해 9.19 공동선언 이후 라이스 장관과 측근들은 독일을 통일시키고 유럽을 재편했던 것처럼 동아시아 안보구조를 재편하는 구상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라이스 장관의 보좌관이었던 필립 젤리코 자문관이 라이스 장관에게 많은 보고서를 올렸으며 일부 관리들은 이를 독일을 통일시켰던 `4+2회담’을 역사적.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다소 황당한 노력’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케슬러 기자는 소개했다.

또 라이스 장관과 보좌진들은 9.19 공동선언 이후 몇달동안 이미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구상에 중점을 둔 계획을 입안했으며 부시 대통령도 이에 대해 흥미를 가졌고, 라이스 장관도 미 정부내 이견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행정부내 관리들은 그런 대담한 구상을 작전계획이나 협상으로 어떻게 실현시킬 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

이런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작년 4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미국을 방문,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오찬회동을 갖던 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0년대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처럼 경제개혁을 할 것으로 믿을 수 있느냐면서 “내가 김 위원장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다고 케슬러 기자는 전했다.

이에 대해 후 주석도 부시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의 돌파구 찾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에 사절단을 보내기로 합의했으나 북한은 이미 미사일 발사실험 준비에 착수하고 그해 7월4일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으며 뒤이어 10월에 핵실험을 실시, 때를 놓쳤다고 케슬러 기자는 말했다.

케슬러 기자는 또 크리스토퍼 힐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가 9.19 공동선언 직후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 핵포기를 꺼리는 북한 군부를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북한 방문에 앞서 북한이 먼저 핵원자로를 가동중단하는 등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행정부내 반대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9.19 공동선언’ 합의 과정과 관련, 당초 합의문에는 `미국과 북한간의 평화적 공존(peaceful coexistance)’이라고 돼 있었으나 라이스 장관이 미 행정부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우려, 힐 수석대표에게 `평화적 공존’을 삭제할 것을 요구해 결국 `함께 평화롭게 존재한다(exist peacefully together)’라는 표현으로 바꿨다고 케슬러 기자는 소개했다.

`9.19 공동선언’이후 북핵 6자회담 재개에 최대 걸림돌이 됐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 행정부의 위폐담당기관들은 이미 지난 2005년 7월 BDA가 북한의 위조 달러화, 마약 거래 등 불법활동 자금을 세탁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케슬러 기자는 주장했다.

또 힐 차관보의 참모들은 `민감한 협상’ 분위기를 망칠 것을 우려, 북한의 위폐활동에 대한 조치에 반대했고, 힐 차관보도 북한의 합법활동에는 영향을 주지 말고 불법적인 활동에만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우려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외교관들을 계속 행복하게 하기 위해 북한의 범죄활동에 대한 철퇴를 거둬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

한편, 케슬러 기자는 라이스 장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이 10여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게 하고, 핵실험을 하도록 한 것은 외교적 실패”라면서 “라이스 장관은 북핵 문제를 다루면서 고립정책이 옳은 지, 포용정책이 올바른 정책인지 결코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이로 인해 미국의 대북정책은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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