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한중일 순방이후…북핵 향배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취임후 첫 아시아 방문을 마치고 21일 귀로에 오른다.

일본→한국→중국 순으로 동북아 3국을 찾은 라이스 장관이 이번 순방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북핵 해법찾기’였다. 이를 위해 그는 분(分) 단위의 일정을 강행했고 `꽤’ 많은 말을 했다.

그 가운데 키워드는 단연 `북한은 주권국가’였다. 이 말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많지만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라이스 장관 자신도 이에 대해 `심사숙고’ 했다고 밝혀, 상당히 계산된 표현이었음을 내비쳤다.

라이스 장관은 `매정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것이 가능한 지 미리 점치지는 않겠지만 다른 대응조치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섬뜩한 느낌도 줄 만 하다.

그의 대북 메시지에서는 강.온 양면이 다 느껴진다.

지난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연장’ 성명 이후 40일 만에 이루어진 라이스 장관의 동북아 순방은 그간 한.미.중.러.일 5개국 실무진의 `긴박한’ 협의에 이어 나온 미측의 북핵 `대응’ 행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북한의 반응이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라이스, 대북메시지 뭔가= 라이스 장관은 유독 “이제는 북한이 전략적 결정을 할 때”라고 유독 강조했다. 여기에는 `더는 기다리기 힘들다’ 뉘앙스도 포함돼 있다. 또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는 듯 하다.

20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는 `2.10 성명’ 직후인 지난달 14일 반기문(潘基文) 장관의 방미로 성사된 워싱턴 외교장관 회담과 마찬가지로 사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며 이를 촉구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메시지도 이를 감안한 복안인 듯 하다.

북한에 대한 `유연성’을 강조하는 중국의 요청에 부응, 중국이 북한에 대해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

의도가 어쨌든 북한을 주권국가로 공식화한 것은 국제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동등한 협상 대상자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6자회담 틀내 북-미 대화’를 강화하겠다는 미 행정부의 의지 표현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김 숙(金 塾)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21일 CBS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6자회담이 열리게 되면 그 틀 내에서 미-북간 양자접촉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지난 2월 반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미 양국간에 협의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는 작년 6월까지 3차례의 6자회담에서 북-미 양자접촉을 했으나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왔다. 따라서 6자회담이 열리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북-미 회담을 갖겠다고 한 것은 기존 틀 내에서 북한의 우려를 포함한 모든 관심사를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느낄 만한 두드러진 메시지는 없다는 점에서 북한이 호응할 지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되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대학교수 출신답게 전략적 선택의 구체적 내용을 일일이 열거했다.

“첫 단계는 북한이 6자회담에 들어오는 것이며 그리고 전략적 선택을 하겠다고 말하고 핵야심을 포기하고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등 모든 핵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고 그 다음에 검증 조치를 실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선(先) 핵폐기 요구 아니냐’는 북한의 반발을 살 공산이 크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끝까지 인내할 수는 없으며 (복귀하지 않는다면) 다른 조치들은 있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지난 15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6자회담은 옳은 형식이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며 북한이 회담 복귀를 거부할 경우 다른 방식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의 정책 기조로 볼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거부로 6자회담 틀이 깨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유엔 안보리 회부 등의 강경조치로 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 北 어떻게 대응할까= 향후 1∼2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라이스 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들러 한.미.일 공동대책을 조율해 중국 쪽에 전달한 만큼 이를 바탕으로 북-중 채널이 가동될 것이고, 그 이후 북한이 최종적인 선택을 하기까지의 기간을 감안한 코멘트로 보인다.

북-중 채널은 일단 22일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의 중국 방문으로 가동될 전망이다. 박 총리는 경제통으로 `북핵’의 직접적인 라인은 아니지만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본격적인 논의는 중국 측 인사의 방북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의 2.10 성명 이후 한미 외교 장관 회담(2월14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2월21일), 한.미.일 3자 고위급협의(2월26일.서울),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방한 및 한-중, 미-중 협의(3월2∼3일), 송민순(宋旻淳) 외교부 차관보의 러시아 방문(3월9∼13일),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의 일본 및 본국 방문 등 `숨가쁜’ 협의가 진행돼 왔다.

지금까지 북한이 외무성 성명과 비망록, 관영매체의 논평 및 보도를 통해 밝힌 입장은 6자회담에 나갈 의향은 분명하며 그러나 `조건과 명분’이 충족돼야 가능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조건’은 북한의 일관된 주장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고 `명분’은 북한을 겨냥한 폭정의 종식 발언을 거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보다 구체적인 조치로 작년 6월의 3차 6자회담에서 합의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첫단계 조치인 `동결 대 보상’ 원칙의 합의가 복구돼야 한다고 곁들이고 있지만, 과녁은 폭정의 종식 발언의 철회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최근 며칠새 북한이 라이스 장관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1일 워싱턴 타임스 회견에서 폭정의 종식 발언과 관련해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데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사과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고 북한의 주장을 일축한 바 있는 라이스 장관은 20일 KBS와의 회견에서는 “(내가 한)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한발을 뺐다.

발언을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관련해 `확전’은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선택은 이에 대한 해석과 관련될 공산이 크다.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성의 표시는 무시한 채 끝내 폭정의 종식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앞으로도 북-미 간의 `강(强) 대 강(强)’ 대립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해결로 접근하는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