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시 특별시 승격 中과 사전 교감한 듯”

북한 최초의 자유경제무역지대인 라선시가 ‘특별시’로 승격됨에 따라 북한의 대외무역과 관련된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일 “라선시를 특별시로 한다”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의 ‘정령’을 소개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과 해당 기관들은 이 정령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대책을 세울것”이고 전했다.


라선특별시 승격은 최근 김정일의 라선시 방문과 ‘대외무역 강화’를 제시한 신년공동사설 발표에 뒤따른 후속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12월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김정일은  라선시가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래 18년만에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고 라선대흥무역회사 등에 대한 현지지도를 진행했다.


김정일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대외무역을 더욱 발전시키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북한매체들은 덧붙였다.


그는 대외무역의 의미를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는 중요한 경제적공간이며 다른 나라들과의 친선협조를 발전시키는 첫 공정”이라고 규정하며 라선지역 경제일꾼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지난 1일 발표된 신년공동사설에서는 “대외시장을 확대하고 대외무역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목표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북한이 다시 한번 라선시를 대외무역의 거점으로 발전시켜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라선시는 김일성 생전에 ‘북한 개혁개방의 신호탄’으로서 내외에 각광을 받았지만, 김정일 집권이후 ‘식물 특구’로 전락하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북한은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 중인 1991년 12월 ‘정무원 결정 74호’를 통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지정한 후 1993년 9월 라진시와 선봉군을 합병해 라진-선봉시 (직할시)로 개편했다. 2001년 5월 라선시로 행정구역을 다시 통합, 개성시, 남포시와 함께 ‘특급시’로 운영돼왔다.


그러나 이번 정령을 통해 라선시가 유일한 ‘특별시’로 전격 승격되면서 대내외 경제적 의미에서 평양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 수도 평양시는 북한 정권수립 직후부터 ‘특별시’로 운영되다가 1952년부터 ‘직할시’로 조정된 바 있다.


라선시는 90년대 중반까지 중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 기업들까지 관심을 갖는 북한 내 ‘노른자 땅’으로 부각되어 왔지만, 90년대 중반 경제난 심화로 인해 외국자본의 직접투자가 뒤따르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왔다.


북한은 이같은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1997년 ▲1달러당 북한돈 200원으로 환율현실화 ▲사기업활동 허가 ▲기업의 독립채산제 운영 ▲ 원정리에 자유시장 개설 ▲북-중국경통행 절차간소화 등 당시로서 파격적인 운영원칙을 대외에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통행 및 자본이동 자유화 등 경제특구로서 가져야할 핵심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빛을 보지 못했다.


특히 2004년에는 중국이 자국민의 원정도박을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인들의 라진 방문을 전격 금지함으로써 홍콩자본 투자로 건설된 엠퍼러 호텔과 같은 외국인 관광시설마저 휴업에 들어가는 등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은 2005년부터 중국 연변자치주의 동방 대외교역 창구로 급부상한 훈춘(琿春)과 육로 건설에 나서는 등 라선 경제특구 살리기를 재개했다. 중국 자본을 유치해 나진항을 개발함과 동시에 대중 육로개척을 통한 물류이동 기반을 닦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1, 2차 핵실험을 거치며 중국과 관계가 일시적으로 소원해지고, 중국측 민간 사업자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09년에 이르러서야 중국 창리그룹과 나진항 1호 부두 개발사업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진항 3호 부두 독점 사용권은 이미 러시아에게 넘겨준 상황이다.


결국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라선시가 김일성이 생전에 경제특구로 지정해 놓았던 ‘유훈’을 관철해야하는 정치적 숙원사업으로 남아왔다. 특히 경제 재건 및 3대세급 구축을 위한 북한내 사전 정치작업을 위해서라도 라선특구의 부진한 상황은 조속히 개선되어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라선특구를 되살리기 위한 북한의 복안에 획기적인 변화가 담겨 있느냐 여부다. 


이와 관련 조명철 대외경제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라선특별시 지정과 관련해서 중국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팀장은 “특별시라는 명칭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제도와 법령이 적용되는 동시에 정책적인 우선 순위가 높은 도시라는 뜻”이라면서 “그러나 중국의 도움이 없이 북한 스스로 경제특구를 발전시켜 나가긴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특성상 실패한 정책은 성공할 때 까지 유효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북한은 중국의 동북지역 개발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를 다시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아래, 신의주나 남포에 대한 경제특구 지정 대신 라선에 다시 힘을 쏟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계획이 현실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과거와 전혀 다른 제도와 투자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라진특구의 성과가 부진했던 이유는 외국인의 출입이나 자본의 이동 등 자유로운 경영에 제약에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은 또 “라진특구는 인접한 시장이 없다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개성공단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가까운 남한의 소비시장 때문인데 라진특구의 배후에는 그런 시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내부환경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이 외국자본들의 투자를 망설이게 했다”면서 “앞으로 중국 자본 유치를 통해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고 투자환경을 바꾸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결과는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진특별시가 경제특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입출입 자유 허용, 달러 및 위안화 등 자유로운 외화거래,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안정 등이 꼽는다.


이러한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한국 기업들의 라진특구 참여도 급물살을 탈수 있다. 속초~블라디보스토크 간 여객선박을 운항중인 D기업의 경우 이미 수년전부터 라진항 입항을 놓고 물밑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