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염승철 기자와 라디오현장 함께 합니다. 현재까지 3만2천 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데요. 남북하나재단에서 이 탈북민들의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를 열었습니다. 염승철 기자가 현장에 직접 다녀왔죠?
- 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15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2018년도 북한이탈주민 경험사례 발표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은 탈북민의 초기정착을 지원하는 단체인데요. 다섯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발표대회는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은 꿈과 좌절, 성공과 실패 등 생생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일반시민 100명의 청중평가단과 각 지역에 정착한 탈북민 100여 명이 일반청중단으로 각각 참석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장이 되었는데요. 먼저 남북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의 개회사와 아나운서가 행사를 시작하는 현장 들어보시겠습니다.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 이 분들의 이야기가 하나원생들에게 정착의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또 다른 분들에게는 북한이탈주민을 이해하고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자리를 빌려 남북하나재단은 3만2천의 북한이탈주민이 모두 정착경험을 자랑스럽게 나누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자립 자활 분야에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드리며…아나운서 : 2018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진행: 시작부터 뜨거운 현장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발표대회라고 하셨는데, 몇 명의 탈북민이 발표를 진행했습니까?
- 총 9명이 발표를 했습니다. 이번 발표대회의 응모자는 무려 65명이었다고 하는데요. 두 차례의 예선심사를 거쳐 선정된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겪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격려사와 내빈 소개에 이어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됐는데요. 각 발표는 5분씩 진행이 됐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 장경희 씨는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발표를 시작했는데요. 바로 자신감을 찾으며 장내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장경희 씨의 발표내용, 잠시 들어보시죠.북한 이탈주민 장경희 : 지금 현재는 포도하우스 3000평, 노지 농사 1000평을 짓고 있습니다. 낮에는 요양병원에서 경리로 일하고 저녁에는 가정에서 주부로 일하고 휴일에는 밭에서 농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24시간이 모자라게 뛰어다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근한 엄마,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로 멋지게 당차게 살아가는 슈퍼우먼입니다.
진행: 정말 패기가 넘치는 목소리네요. 4천평이면 꽤 농사를 많이 하는 거고, 한국 사람이라도 도시에 거주하다가 연고없는 시골로 가면 고생을 하는데요, 장경희씨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 귀농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북한에서 온 간첩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선들을 이겨내고 편견을 벗어나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겸손하고 성실한 생활 끝에 마을 주민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쌓았다고 합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남철 씨의 경우도 조선소에서 일하며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말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쉴 때도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행: 역시 탈북민들이 힘겨워하는 부분은 사회적, 문화적 차이에서 나오는 인간관계였군요. 또 어떤 것들을 힘든 점으로 꼽았습니까?
- 먼저 가족의 재결합을 꼽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 고생한 사연들이 많았는데요. 궂은 일들을 하며 돈을 벌고, 그들을 데려오는 과정이 정말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만남에 성공하지 못한 분도 많았는데요. 주창덕 씨의 경우 두만강을 건너던 아내와 아들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에,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중국에 가서 두만강 기슭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주창덕 씨였는데요. 북한에서 배운 친환경 농사를 활용해서 회사의 매출을 3배로 늘렸다고 합니다.
진행: 가슴 아픈 시간들을 이겨내고 치열하게 삶을 꾸려가는 탈북민들의 열기가 느껴지는데요, 이런 분들이 제법 있죠?
- 그렇습니다. 공혜련 씨는 한국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무려 7개의 자격증을 땄고요. 박금숙 씨는 자신을 한국으로 부르기 위해 남편이 진 사채 빚을 갚아가며 9개의 자격증을 땄다고 합니다. 상상 이상의 엄청난 노력을 하며 생활하는 탈북민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또 노은경 씨의 경우 대학교 진학은 물론 석사까지 마친 분이었습니다. 노은경 씨의 이야기 들어보시죠.북한 이탈주민 노은경 : 대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퇴근 후 학교에 가야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과제와 졸업시험, 영어시험까지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계약직이었던 저는 정규직이라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평균 30명 치료하던 환자를 5~60명으로 늘렸고, 그렇게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단 한 번의 안전사고도 없었기에 실장님은 저를 믿고…(중략) 지금의 을지대학교 을지병원 정규직 물리치료사라는 기적 같은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저에게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내년 봄 저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입니다.
진행: 한국에 와서 치열한 공부 끝에 원하는 직업을 찾고,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리신다고 하니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사연입니다.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 탈북민들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군요?
- 그렇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탈북민들은 전기기사, 물리치료사, 농업 종사자, 광역자치단체의 공직자, 건설회사 대표,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각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남철 씨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생활을 꿈꾸고 있을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했는데요. 그는 첫째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둘째 낮아질 줄 알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자기가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성공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 현재 한국에 정착 중이거나 앞으로 정착할 북한 주민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염 기자가 이번 발표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분을 소개해주신다고요?
- 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표는 70세가 넘은 탈북민 조정숙 씨였습니다. 조정숙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그 후에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품었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분이었습니다. 조정숙 씨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북한 이탈 주민 조정숙 : 60살이 넘어 자전거를 배워서 오전에 한 집 오후에 한 집 가사도우미 일을 했고, 모텔 청소, 식당 설거지, 환자 돌보는 일을 하며 닥치는 대로 일해 번 돈으로 저희 가족 여덟 식구를 몽땅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에게 영웅 칭호를 줬습니다. (중략) 어려서 가졌던 꿈을 이루고 싶어서 며칠 밤 지새며 하루하루 음을 찾아내 가야금에 성공해 처음으로 가야금 독주를 할 때 난 10대 소녀로 돌아간 기분이었고 너무나도 기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저의 이 모습을 봐준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이번 발표대회를 통해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봤는데요. 다른 탈북민은 물론 한국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돼서, 사회 전체의 통일역량을 높이는 자리였다고 봅니다.
진행: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염승철 기자와 함께, 탈북민들의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 현장 소식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