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공안당국이 간첩활동 혐의로 수사 중인 일명 ‘왕재산’ 사건에 따른 후폭풍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북한 정권의 간첩 활동에 정치권 인사가 개입된 의혹이 포착된 만큼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것과 달리 전·현직 당직자와 지자체장 등이 연루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번 수사가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31일 논평에서 “북한 정권의 간첩활동이 대한민국 정치권 깊숙이 들어온데 이어 국회에까지 손을 뻗쳤다는 점에서 국가안보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측면에서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일부 야당과 진보매체들이 여러 형태로 이번 간첩단 수사의 발목을 잡으려는 기류가 표출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노당이 수사당국의 조사에 앞서 ‘정치적 기획수사’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일부 진보매체들이 ‘공안당국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면서 “종북적 진보진영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그 정체성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직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등이 대거 수사선상에 오른 민노당은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06년 북한의 지령과 공작금을 수수한 혐의였던 일심회 사건때도 민노당 주요 간부들이 포함된 바 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구속된 사람의 컴퓨터에서 명단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소환을 하고 있는데 대해 당사자들도 어이없어 한다”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이자 진보정당 말살음모를 드러낸 것으로서, 공안당국에 대해 끝까지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 대변인은 또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인천지역 당직자들을 모두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이상의 무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적극 알리고 구태의연한 정권의 공안탄압에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노당은 1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대응방안을 중점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현재 ‘왕재산’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피의자 중에는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을 지낸 이모 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이 씨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국회의장 비서관이 국가 중요 정보에 선이 닿았으면 얼마나 닿았겠는가. 나와 연관 지어 사건을 증폭시키려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의장 정무 비서관 경력을 민주당과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억지”라면서 “전략기획국 부위원장 역시 비상근인데다 해당 직함을 받은 사람이 수십명은 됐을텐데 마치 민주당이 관련된 것처럼 봐서는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공안당국은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으로 남한에 지하당인 ‘왕재산’을 구성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수십명을 수사중이다. ‘반국가단체 조직’ 혐의로 사법처리를 한 것은 지난 1999년 이른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북한 노동당 225국은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후신으로 남파·고정 간첩 관리, 지하당 구축 등을 주 임무로 하는 대남공작 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