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권력 못잡으면 무역일꾼도 패가망신”

김정남 계열로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무역일꾼 강 씨는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김정남의 후원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연줄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그는 베이징에서 북한 재벌이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지만 권력의 눈 밖에 날 경우 하루살이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북한 무역 상사원들이 국내 복귀를 두려워 하는 데는 생활 수준이나 자식 교육 면에서 중국 부유층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다롄에 거주하는 40대 중반 리모 씨도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는 “천안함이니 뭐니 복잡하다. 이젠 이곳(중국)이 내 고향이고 살아갈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대의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 또 다롄 개발구에 30만불짜리 저택 두 채를 가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도 있어 골프를 치고 예능에 소질이 있는 자녀를 유럽에 유학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樂)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북한 물자를 외국에 직접 수출하려면 광물이나 수산물 외에는 답이 없다. 다른 공업품은 가급적 피하고 북한 군부 혹은 경공업성 등 내각에서 필요한 물자의 수입을 중개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이들처럼 나름 성공한 북한 무역일꾼들은 자녀를 데리고 북한을 떠나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북한의 어려운 경제난에도 “난 관계없다”거나 “관심이 없다. 모른다”는 다소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북한에 물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검은 돈을 사취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경공업 분야가 발달하지 않아 생필품 수입이 많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북한 간부와 결탁해서 이중계약, 리베이트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무역일꾼들이 부지기수다.


물론 강 씨는 자신도 원가를 부풀려 북한에 물품을 납품했고 군부의 힘과 김정남의 배경을 업고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0만불 짜리 내 집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면서 장사꾼 입장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비리를 없애려고 북한 당국이 제품 공급업자에게 대금을 직접 송금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미 한 패가 돼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 고양이 앞에 생선 꼴인 셈이다.


이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 자금을 조성해도 이를 관리하는 상급 기관에 충분한 대가성 자금을 제공하면 무마된다. 이 송금 액수의 크고 작음에 따라 능력을 평가할 정도다.


이번 국방위 인사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장성택의 독주시대가 개막됐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김정일도 장성택이 자신과 직접 피가 섞이지 않았고 과도한 권력 집중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대안 부재라는 산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후계구도 윤곽이 가시화 되면서 강 씨와 같이 김정남 계열에 섰던 무역일꾼들이 대거 김정은 라인으로 기회주의적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 이들은 장성택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김정남과 장성택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공통의 경험을 거치면서 관계가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에 따르면 김정은은 김정남을 권력의 경쟁자로도 보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권력의 속성상 피붙이도 믿지 못하는 판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복 형제가 사이가 좋을 일이 없다”면서 “아들과 비슷한 나이에 유학파 출신인 ‘김대장’이 대세다”면서 김정은으로 말을 갈아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 단둥(丹東)에 무역사업 차 나온 인민군후방총국 소속 김모 지배인도 이와 같은 인식을 함께했다. 김 씨는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에 김정남에게 줄을 섰던 사람들이 곤란한 모양이다”면서 “이 사람들은 북한 당국에 매출액을 거짓으로 보고하거나 리베이트 비용을 받아 챙겨 돈을 모았기 때문에 뒷 배경이 든든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김정남이 그래도 장성택과 친분이 있기 때문에 뒤는 봐주면서 소개를 부탁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검은 돈을 통해 개인 자금을 축적한 이들이 큰 돈을 뿌린다는 소문이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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