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사람만큼이나 지친 북한”

“이 모든 노고가 비탈을 타고 휩쓸려 내려가 산아래 논을 덮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북한에 대기근이 닥친 1995년 이래 10년 넘게 대북지원을 해오고 있는 미국의 국제자선단체 머시코(MercyCorps)의 공동창설자 엘스워즈 컬버의 미망인 에스머 조 컬버씨가 지난 6월 북한을 방문한 뒤 쓴 여행기에서, 두달 뒤 있을 북한의 수해로 인한 농업피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산비탈 경작지가 폭우에 사라지고 산아래 논이 토사에 뒤덮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에스머 조씨는 ‘북한을 처음 보고’라는 제목으로 머시코의 웹사이트에 올린 방북기에서 “끝간 데 없이 저 멀리 산언덕으로 이어지는 논과 배추, 옥수수밭들”에서 풍요를 본 게 아니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과잉경작으로) 지쳐버린 땅”을 알아챘다.

그는 논밭으로 뒤덮인 북한의 산야는 “나무가 사라져, 태풍과 가뭄에 속수무책”인 땅이 돼 버렸다고 묘사하면서 “점차 회복불능의 단계로 탈진해가고 있는” 북한의 사람과 땅을 보고 느낀 안타까움을 전했다.

에스머 조씨는 머시코가 북한을 비롯해 제3세계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정치에 관한 것이거나 누가 올고 그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머시코는 북한에 대해 미사일과 핵문제에 상관없이 과수.양어 등의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오면서 룡천역 폭발사고, 수해 등의 재난 때마다 인도주의적 긴급구호를 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이 단체 공동창설자의 한 사람으로 2005년 숨진 컬버씨에게 이듬해 미국인에 대해선 처음으로 국가훈장을 수여했다.

다음은 에스머 조씨의 방북기 요지.

『생전 20회 이상 북한을 방문했던 남편은 돌아올 때마다 평화롭고 사려깊은 협상의 가능성을 얘기해줬다. 남편은 동료들과 함께 한국(북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에 긴요한 도움을 주는 길을 닦기 위해지칠 줄 모르고 노력했다.

덕분에 나는 직접 북한을 여행하기 전에, 그 도움을 받은 사람과 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또 점증하는 상호존중에 대해 알고 있었고, 경청과 이해와 수용의 얘기도 듣고 있었다.

농촌에서 차를 타고 가다 끝없는 모내기 행렬을 지나치게 됐다. 모든 주민이 모내기에 동원됐다는 말을 들었다.

일부 여성들은 밝은 색깔의 옷차림에 화장을 하고 아이들이나 서로에게 떠들썩하게 뭔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도회지인들 같았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자 그들도 웃으며 마주 흔들었다. 희망의 징조런가. 그러나 다른 이들은 지나치는 우리를 그저 뒤돌아보기만 하거나 우리가 탄 트럭을 모르는 체 발걸음만 재촉했다.

논에서 모심기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곳 북한의 농촌에선 일종의 금욕주의와 피로감만 느껴졌다. 일만이 그들의 초점이었다. 끝간 데 없이 저 멀리 산언덕으로 이어지는 논과 배추, 옥수수 밭뙈기들은 이를 뒷받침했다.

경작지로 개간된 산들은 오래전에 나무가 사라져, 태풍과 가뭄에 속수무책일 것임을 말해줬다. 폭우에 연약한 농작물들을 보호해줄 어떤 것도 없었다. 이 모든 노고가 비탈을 타고 휩쓸려 내려가 산아래 논을 덮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북한의 땅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탈진되고 있어 마침내는 보양과 휴식없이는 회복불능의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도시 주민이건 농민들이건 왜소하고 군살이라곤 없이 야위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이들 모두를 제대로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게 많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나는 한 병원의 수술실을 보고는 남편이 전하고자 한 뜻을 이해하게 됐다. 수술실엔 구석기 시대에나 쓸 법한 쇠로 된 수술대와 낡은 등 한개만 달랑 있었다. 주로 한약처방에 의존하는 듯, 바깥에선 약초를 말리고 있었다. 수술실의 안전과 기능을 개선하기에 충분한 의료품과 기술을 우리가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치에 문외한지이지만, 정치적 수사에 가려져 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그 아래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봐 왔다.

나에게 수줍게 손을 마주 흔들었던 여자들의 눈망울은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졌다. (머시코가 지원해준) 과수원과 양어장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들의 딱딱한 표정 속에서도 ‘컬버씨’라고 남편의 이름을 말할라치면 기쁨에 반짝이는 눈빛들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선(善)에 대한 깨달음으로 모두 미소지었다.

아무도 자신의 깊은 생각을 겉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말이 꼭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며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머시코가 북한과 같은 지역에 들어가는 이유이고, 옳은 일을 이룰 때까지 그곳에 머무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심판에 관한 것도, 정치에 관한 것도, 누가 옳고 그른가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는 그저 그저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 이웃이 모내기를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책무에 관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재앙중의 재앙이 될 것이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