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볼 수 있게 높은 산에 묻어다오”

“언니, 오늘이 언니 동생, 영화 제 생일이에요”

“내가 한시라도 부모님과 너희 생일을 잊어 본 적이 없다”

9일 오전 이뤄진 제3차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에서 남측의 장영애(81) 할머니는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서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여동생들을 만나 “지난 50년 세월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자주색 한복을 차려 입은 북측 여동생인 영화(67), 영자(62)씨는 이날 오전 8시 화면에서 전쟁 통에 헤어진 언니 영애씨의 모습이 나타나자마자 기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먹이며 “언니에게 큰 절을 올리겠어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동생들의 인사에 영애씨는 “언니가 미안하다. 나만 살겠다고 와서…”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애씨는 먼저 월남했던 남편을 따라 1947년 서울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북측 가족들과는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임종 전까지 부모님을 모셨던 영자씨는 어머니와 영애씨가 찍은 낡은 흑백 사진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임종 때까지 이 사진과 언니가 직접 수놓은 방석을 가슴에 품고 계셨다”며 “`통일돼 언니를 다시 만나면 꼭 이것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울먹였다.

그러자 영애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한동안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회한의 눈물만 흘렸다.

영자씨가 이어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면서 `내가 죽으면 평양의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남향으로 묻어다오. 죽어서라도 네 언니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자 상봉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상봉 끝에 영화씨는 함께 화상상봉에 나온 남측 조카 윤수준(47)씨에게 “통일될 때까지 어머니를 잘 모셔달라”며 세월과 함께 깊어진 언니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전했고 수준씨는 “100살이 넘게까지 잘 모시겠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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