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건널때 결심이면 못할 것 없다”

▲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있는 탈북자들

남편과 함께 두 딸을 키우며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김영옥(가명·2002년 입국)씨. 전남 목포에 살고 있지만 남들과 다른 말투 때문에 고향이 어디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경상도에서 왔다”고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말투가 꼭 경상도 사람이다.

김 씨는 5년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이다. 그러나 그에겐 더 이상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 이젠 완전히 ‘남한사람’이 다 됐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남한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말한다.

김 씨는 입국 5년 만에 생계비 지원은 물론 정부가 제공하는 주택도 반납했다. 이젠 본인의 힘으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들과의 만남도 전혀 두렵지 않다는 김씨는 “이제 어딜 가도 잘 살 것 같다”고 당당히 말했다.

탈북자 1만명 시대. 그러나 김 씨와 같이 남한생활에 적응을 마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좌절과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 안타깝지만 이 과정을 이기지 못해 낙오자가 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랜기간 ‘적응기’를 거쳐 우리 사회에서 터를 닦은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두만강을 건너 온갖 어려움 끝에 남한에 입국한 것처럼, 그때의 마음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남한사회에 적응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거듭나는 한편, 남한에서의 또다른 ‘성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탈북자들에게 직접 물었다.

[기획취재①-탈북자 1만명 시대]

장기적인 탈북자 지원정책 필요

[기획취재②-탈북자 1만명 시대]

탈북자 정착업무 행자부가 맡아야

[기획취재③-탈북자 1만명 시대]

사회통합정책 서둘러야

[기획취재④-탈북자 1만명 시대]

탈북자 정착 돕는 사회통합책 마련 시급

◆정착지원금에 기대지 마라 = 탈북자들은 우선 “정부 정착지원금에 지나치게 기대지 말라”고 지적한다. 정착지원금이 남한사회 적응하려는 개인의 적극성이나 열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옥 씨는 “나와 같은 해 남한에 입국했어도 아직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만 갖고 생활하는 탈북자들이 있다”며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지원금으로 생활히 가능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착지원금으로 당장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노력해서 이 사회에 빨리 적응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희(가명·2001년 입국) 씨는 “과거에 비해 현재는 초기 지급금이 적어 탈북자들이 정부 지원금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 길은 오직 내가 개척해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정착지원금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미흡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탈북자들에게 직업교육과 적응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빨리 취업하게 함으로써 결국 이들의 취업동기를 깎아먹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미비점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이 씨는 “정부의 도움과는 별개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빨리 남한 사고방식 및 생활방식에 적응하려면 자신만의 적응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옥 씨의 경우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한국사회를 너무 모르는데다 탈북자에 대한 차별도 많아 눈물을 많이 흘렸다”면서도 “꾹 참고 사회생활을 했더니 한국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에 대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경상도에서 왔다는 거짓말을 했던 경험을 말하며 “(한국에서)이왕 살 바에는 빨리 적응해버리는 것이 속편하다”고 말했다.

이창희 씨는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자신만의 행동수칙을 만들었다. ‘말투를 바꿔라’ ‘매너 지켜라’ ‘자부심을 갖자’ 등을 설정해놓고 매일매일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 씨는 “내가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무엇이든 못하겠나 생각하니 안 되는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점을 인정하라 = 하지만 적응한다고 해서 남한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무조건 받아들이긴 힘들다. 오히려 무조건 이해하려고만 하니 더 힘들 때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인 북한연구소 김승철 연구원은 “우리가 남한 사람들과 많이 다르고, 탈북자라서 불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남한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고 하기보다 탈북자라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입국해 현재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정대호(가명) 씨는 “남한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작은 일에도 오해가 생겨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다”며 “그것을 견디지 못해 종종 감정싸움이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 씨는 “아직 남한에 대해 겪어보지 않아서 남한 식 사고방식을 모른다고 인정해야 한다”며 “상대방이 이해해주기만을 바라기 전에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낮게 잡고 노력하라 = 탈북자들이 초기 정착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한에만 오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믿는 기대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

김 연구원은 “탈북자들은보통 남한에 오면 돈도 쉽게 벌고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처음 남한에 와서 3년에서 5년 정도는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 잡지 말아야 한다”며 “돈을 크게 벌려는 생각보다 우선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해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박상학 대표도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대한 환상이 많다”며 “높은 데만 바라보다가 실패하기 보다는 낮은 목표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것이 낫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 대표는 또 “북한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할 때를 기억하며 그런 마음으로 남한사회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마음만 갖는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영옥 씨도 “노력하지 않으면 북한에서 살던 대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이를 악물게 되더라”며 “모든 것은 본인에게 달려있으니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무엇보다 ‘인내심’을 강조했다. 늦은 나이 때문에 직장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혀야 했던 정씨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더니 직장도 구해지고,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만 참고 노력했더니 인정해주더라”고 말한다.

그는 “힘들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다르다”며 “모든 일에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창희 씨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생각하니 의지가 생기더라”며 “한국은 노력만 하면 잘 살수 있는 사회인데 탈북자라고 해서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씨는 “살기 위해 남한에 왔는데, 탈북자들은 정말 잘 살아야 한다”며 “우리사회과 관심을 갖고 탈북자들이 자립하고 사회의 주역으로 설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탈북자 1만명 시대-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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