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 ‘남조선 삐라’ 함께 보던 친구 K에게

그리운 친구 K에게


우연히 집어든 삐라 한 장을 함께 나눠보던 그 때. 너는 삐라에 자국을 남기면 안 된다고 손을 몇 번이나 옷에 비벼댔지. 너는 삐라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게 진짜일까’라고 몇 번이나 나에게, 스스로에게 물었지. 


삐라를 수거하면서 서로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남조선은 어떤 동네일까라고 상상했었지.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때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남조선에 왔고, 너는 아직 그곳에 남아 우리가 보낸 삐라를 몰래 보고 있겠구나. 


사실 난 탈북 결심을 굳히는데 삐라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단다. 그래서 더 많은 삐라가 북한에 날아가 주민들이 김정은 일가가 아닌 자신과 가족에게 충성하고 삶을 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친구야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니? 사실 제대로 인사하자면 ‘잘 지내고 있니’라고 물어야겠지만 그곳 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차마 그렇게 물어볼 수가 없구나. 날마다 전시 태세 훈련이다 검열이다 정신이 없겠지.


난 남조선에서 직장(회사)생활을 하면서 방송으로 대학 공부도 하고 있다. 여기는 방송을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 졸업장을 주는 제도가 있단다. 거기선 내가 대학공부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그런 일이 여기선 많아. 회사에선 모든 노동자에게 약속된 노임을 주고 있단다. 노임을 안 주면 회사 지배인(사장)이 잡혀가. 여기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야. 대충 일하는 것은 안 통해서 처음엔 무척 고달팠다. 이런 실정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려고 나처럼 북한과 남한에서 생활을 모두 체험해본 탈북자들이 북한에 삐라를 날려 보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북조선의 3대 세습 반대와 북한의 민주화의 필요성을 담은 삐라를 날려 보내고 있어. 북조선에서는 삐라를 날려 보내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즉시 남조선에 포탄을 떨구겠다고 위협을 하고.


남조선에서 삐라가 날아오면 부대장의 지시를 받고 삐라 줍기에 나서던 때가 생각난다. 대대병실 앞에 하얗게 널린 삐라를 보고 우린 “남조선 종이가 정말 좋지”하며 남에겐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위험한’ 말도 나눴지.


참 그때 우리가 대대장의 눈을 피해 산등성이를 넘어서 몸속에 감추고 가지고 갔던 남조선 삐라가 지금도 생동(생생)하게 안겨온다. 파란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괴뢰군 병사가 아름다운 아가씨와 해변가를 거니는 장면 밑엔 ‘인민군장병들 올해 여름휴가는 어떻게 짜셨는지요?’ 이런 글도 있었지.


또 ‘적지물자'(전단물을 넣은 풍선) 안에 있던 인형들과 음료수, 볼펜 등은 독약이 묻어있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소대장 이상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보안국 간부가 수거해갔지. 그런데 보안국 부국장이 적지물자 안에 있던 볼펜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놀랬니.


생각나니? 삐라수거를 몇 번 하고 보안 당국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10부작으로 된 영화 ‘면전심리작전’과 매일 아침 독보에서 사상 사업을 진행하던 일들을 말이야. 얼마나 주민들의 ‘사상변질’이 두려웠으면 중요대상 건설 작업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여줬을까 하고 지금도 생각해본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영화를 비웃었지. 땅파기 작업을 하다 손을 다친 나에게 산속에서 주은 반창고(남한 밴드)를 붙여주고 들킬까 두려워 헝겊을 위에 감아서 사람들의 눈을 피했잖아. 결국엔 일주일도 안 돼 상처가 다 나았을 때 우리가 한 말 생각나? 남조선 경제가 발전한 건 반창고(밴드) 하나를 놓고 봐도 알 수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보안국 선전부에서는 항상 우리에게 “삐라를 보지 말라. 삐라를 읽으면 삐라의 사명이 달성되기 때문에 절대 보면 안 된다. 보는 사람도 신고하라”면서 “남조선 괴뢰도당이 우리를 사상적으로 변질시키려고 저들도 못쓰면서 좋은 물건을 보내 유혹한다”고 선전했었지.


지금 북조선에서는 삐라살포에 대해 여전히 “남조선 괴뢰도당의 반 공화국책동으로 내부로부터 인민들을 와해시키려고 악랄하게 책동한다”고 선전하겠구나. 마음은 한달음에 달려가 이곳의 실정을 그대로 말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친구야 너에게 보내는 이 편지가 3대세습을 무너뜨리고 북한 민주화를 실현하는 지름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젠가는 너와 내가 남조선 삐라를 보고 동경했던 생활이 거기서도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편지 기고=김철진(가명·평양 출신 201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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