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안보 무임승차 후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 핵전력(核戰力)이 경량화, 소형화, 다종화, 정밀화된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미국 본토 타격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이 가시화 되면서 대한민국의 안보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많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 정치권은 사분오열돼 임진왜란, 조선 말 한일합방 등 과거 국난(國難)에서처럼 직면한 위협에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핵 개발 등을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결국 한국을 베트남 식으로 적화하겠다는 목표로 조직적·체계적인 공세를 펴고 있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현재 한국은 스스로 안보를 수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우방인 미국의 힘에만 의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된 상황에서도 미국이 우방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미국의 안보가 실질적으로 위협받고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통해서야만 이익이 보장받는 순간이 올 때도 지금처럼 한국의 편에 서줄까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우리는 과거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반전여론에 밀려 베트남 및 여타 국가에서 떠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 씨가 발표한 가상 시나리오 ‘대한민국 최후의 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북한의 핵무기를 군사적으로 제거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미국과 한국에 김정은이 핵전쟁을 각오한 승부수를 던진다. 소위 수령지도체제의 영속적 유지를 위해 한국을 종속화시키거나 공산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현상타파를 결심하고 백령도에 대한 포격을 명령한다. 한국군은 여러 차례 공언한대로 원점 타격으로 보복에 나서지만, 오히려 김정은은 손해 등을 배상하지 않으면 한국을 향해 핵무기를 쓰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상황이 급박해 지자 일전을 불사하자던 여론은 반전된다.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핵전쟁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한국 정부의 대응을 규탄하는가 하면 한미의 핵우산 정책, 즉 확장된 억지 전략 적용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나고 이에 한반도 문제 개입 관련 미국 내 여론이 회의적으로 돌아선 틈을 이용, 북한은 미국 본토를 핵으로 타격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러자 미국은 결국 중국 및 러시아와 함께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한국은 1975년 베트남 적화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이견과 논란이 많을 시나리오일 수 있으나 현재와 같은 북한의 핵 개발 능력과 속도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한 전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전통적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미국 내 분위기에서도 감지된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북한문제 개입에 회의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GfK 커스텀 리서치가 2015년 10월, 성인 23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반대가 49%로 찬성의 47%를 앞질렀다. 또한 미국의 퓨 리서치가 올해 5월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외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선호하는 미국인은 37%에 불과한 반면, 57%가 불개입을 선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같은 응답 조사의 불개입 선호율이 30% 수준에 머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아진 수치다. 이런 상황이라면 핵을 탑재한 미 본토 타격용인 북한의 ICBM이 완성되면 미국의 여론은 한반도 불개입으로 치달을 것이 자명하다. 이는 향후 힐러리 혹은 트럼프를 수반으로 한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이 위중한 상황임에도 한국 정치권은 탁상공론과 정쟁, 폭로전, 헐뜯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이에 대해 정부는 전시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답답한 현실이다. 1905년 카쓰라 일본 외상과 태프트 미국 육군대장은 대한제국을 제외하고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사실상 한일합병(1910)을 결정했다. 대한제국과 미국은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으나 그 상호 방위조약은 휴지조각이 되고 결국 일본과 미국에 의해 한일합방이 이뤄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의 안보 무임승차의 처절한 후과를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은 것인가. 그때 상황과 지금 한반도의 현실이 너무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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