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전대통령 서거> 되돌아본 국민장 선례

정부가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엄수하기로 결정한 국민장(國民葬)은 어떻게 치러질까.

우선 이날 정부와 노 전 대통령 유족 측간에는 장의 형식만 결정됐을 뿐 발인제와 영결식 일시, 장소, 참석 범위, 운구계획, 조기 게양 여부 등 세부 절차와 방식은 추후 구성되는 장의위원회에서 계획이 수립된다.
정부 수립 이후 그동안 치러진 국민장은 모두 열두 차례다.

최초의 국민장은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 구 선생의 장례로, 1949년 7월5일 거행됐다.

이후 1953년 이시영 전 부통령, 1955년 김성수 전 부통령, 1956년 신익희 전 국회의장, 1960년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후보, 1964년 함태영 전 부통령, 1966년 장면 전 부통령.국무총리, 1969년 장택상 전 국무총리, 1972년 이범석 전 국무총리, 1974년 육영수 여사 등의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1983년 10월에는 동남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행하다 미얀마 양곤 국립묘지에서 북한의 폭탄테러로 순직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의 합동 장례식도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전직 대통령의 경우는 2006년 10월22일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식이 가장 최근이자 유일하게 국민장으로 치러진 사례다.

당시 장의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고문 55명, 국회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 부총리 등 부위원장 8명, 위원 616명 등 총 680명으로 구성됐다.

역시 1974년 8월 국민장으로 치러진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의 장의위원회는 738명, 1979년 10월 국장(國葬)으로 엄수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의위원회는 691명이었다.

최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5일장으로 치러졌으며, 서울에는 서울대병원, 지방에는 강원 등 3곳에 분향소가 설치됐다. 장의비용은 3억3천700만원 전액 국비로 지원됐다.

장례 당일 전국 관공서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차원에서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지만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최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006년 10월 26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의 발인제에 이어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국내 정.관계 주요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시민 등 각계인사 2천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개식을 알리는 군악대의 조악 연주를 시작으로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고인 약력 보고, 조사, 종교의식, 주요 인사 헌화, 조가 등 순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이 끝난 뒤 최 전 대통령 내외의 유해는 운구차량으로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터리-남대문-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경부고속도로를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당시 영결식장에는 일반인도 보안 검색대만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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