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한마리값’에 팔려가는 북한여성

▲ 남한 입국에 성공한 탈북여성

국가인권위의 북한인권실태 보고서가 공개됐다.

탈북자들의 설문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다. 한 장의 설문지에 북한의 모든 인권실태를 진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탈북자들은 치욕스럽고 비참했던 과거를 떠올리기 싫어하는 피해심리가 있다. 이 때문에 말을 잘 안하려 한다.

그러나 사선을 넘나드는 북한의 기아상황, 대낮에 자행하는 공포의 공개처형, 수많은 사람들의 수족을 옭아맨 인권유린상황은 그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들의 눈과 귀만큼 생동한 증언자는 없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듣기에도 생소한 ‘인권’이란 두 글자의 함의(含意)를 남한에 와서 알게 된다. 비로소 자기들이 얼마나 천박하고 열악한 짐승의 삶을 살아왔는지를 통렬히 깨닫는 것이다.

기자도 탈북시절 중국에서 방황하며 탈북자들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수많이 목격했다. 중국사람들로부터 쓰라린 민족적 멸시를 받을 때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정말 실감났다.

6천원(한국돈 78만원)에 팔린 인생

그중에서도 중국으로 팔려온 여성들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2001년 12월 나는 길림성에 있는 ‘뚠화시 황니허진 주얼두어허'(敦化市 黃泥河鎭 珠兒多河)라는 곳에 머문 적이 있다. 정처 없이 흘러가다 멎은 곳이 이 마을이었다.

6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 임장(林場)마을은 모두 한족들이었다. 마을사람들은 나무열매를 따서 팔고, 버섯을 뜯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마을의 젊은 여자애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도시로 나가 마을에는 장가 못간 ‘늙은 총각’들이 넘쳐났다.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자 숙소 집의 중국여자가 “이 마을에도 북조선 여자가 팔려왔다”고 귀띔했다. 주인여자의 말을 통해 탈북여성의 눈물겨운 사연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그 탈북여성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40이 넘은 노총각이었다. 낮에는 술에 취해 사는 건달이었고, 밤에는 밤대로 여자를 못살게 구는 색광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오겠다는 중국 여자가 없자, 부모들은 색시라도 얻어주면 제구실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형제들의 돈을 모아 탈북여성을 사왔다는 것이다.

탈북여성은 팔려온 지 3년이 넘었지만, ‘벙어리’ 상태였다. 돈으로 사온 여자가 어디로 달아날까봐 남편이 말(중국어)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다. 그전에도 이미 여러 번 도망쳤다 잡혀와서 남편에게 뭇매를 맞았다며 중국 사람인 주인여자마저도 혀를 내둘렀다.

남편의 괴롭힘을 참다못해 탈북여성은 그해 겨울 또다시 도망쳤다. 그러나 산골에 사는 탈북여성이 추운 겨울날 도망가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당시 임산마을에는 기차나 버스도 없었고, 백 리쯤 나가야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맨몸으로 도망친 그는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다 발에 심한 동상(凍傷)을 입고 쓰러졌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추격하던 남편과 형제들은 그를 붙잡아 다시 마을로 끌고 왔다.

남편은 탈북여성을 묶어놓고 사정없이 두들겨 패면서 “너는 6천원에 팔려왔으니, 사람이 아니고 내 물건이다”며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려 놓았다.

그후 남편은 집을 나갈 때면 문을 밖으로 잠그고, 밤에는 밤대로 짐승 같은 행위를 감행했다. 탈북여성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마을 이웃들이 동정하려고 하면 그 ‘남편’은 다른 곳으로 빼돌릴까봐 이웃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했다.

그 와중에 아이까지 낳게 된 그 탈북여성은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중국에서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나는 그곳에서 좀 떨어진 뚠화시 웨이후링(威虎嶺) 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마을에도 팔려온 여성들이 5명이나 살고 있었다. 가장 비싸게 팔린 여성은 중국돈 1만원이었고 7천원, 5천원 등으로 달랐다.

예쁘면 값도 비싸, 거리는 국경과 멀수록 비싸

북한여성들이 탈북 후 팔려가는 경로와 ‘매매 값’은 각각 다르다. 탈북여성들을 요구하는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들어 장가가지 못한 노총각들이나 지체 장애인, 건달들이다.

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시작되어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중국에서는 탈북여성들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전문적으로 북한 여성들만 팔아먹는 브로커들도 생겨났다.

중국인 브로커는 북한 브로커에게 여성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북한여성들을 중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유괴나 납치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북한여성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다고 한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중국에 가자’는 그들 앞에 또다시 시련이 놓여지는 것이다.

여성들이 국경을 넘어서면 북한브로커-중국인 브로커간의 거래가(價)는 한 사람당 1천원 내외. 중국에서 ‘돼지 한마리값’이다. 대부분 탈북여성들은 여기까지 금전관계가 이루어지는 것도 모르고 팔린다.

탈북여성을 접수한 중국인 브로커는 다시 산둥성, 허난성, 쩌장성 등 중국내륙이나, 헤이룽장성, 네이멍구 등 북쪽 지역으로 되팔아 버린다. 산둥성 지난(濟南)까지 팔려갔던 탈북여성 조미영(가명)씨의 경우 1만 3천원에 홀아비에게 팔려갔다고 한다.

팔려가는 여성들 중에는 나이가 젊은 10대, 20대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높다. 그중에서 예쁜 여자들은 고가에 팔려간다. 나이가 많을수록 가격도 낮다. 룽징시 대흥촌(大興村)에 살고 있는 50대 탈북여성은 중국돈 3백원(한화 4만원 정도)에 지체 장애인 홀아비에게 팔려갔다.

지금도 수많은 탈북여성들이 산 설고 낯선 중국 땅에서 속절없이 시들어가고 있으며, 한국에 입국한 여성들은 그 많은 여성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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