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독립 6주년…아직도 ‘머나먼 평화’

20일 동티모르는 독립 6주년을 맞아 기념 축제를 벌였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2002년 독립하였다.

동티모르가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독립 과정에서의 끔찍한 학살 때문이다. 동티모르는 세계인들에게 코소보와 함께 기억되어 있다. 새로운 천년을 향해 다가서던 20세기의 막바지 1998년과 1999년, 세계는 유럽의 코소보와 아시아의 동티모르에서 연이어 끔찍한 인종 청소의 학살을 맞이해야 했다.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려던 코소보의 이슬람 알바니아인들은 기독교 세르비아인들로부터 학살을 당했고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려던 카톨릭 동티모르는 이슬람 인도네시아계로부터 학살을 당해야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학살의 만행이 자행된 후에야 국제사회는 개입을 선언하였으며 코소보에는 나토가 출격하였고 동티모르에는 UN 평화유지군이 당도하였다.

동티모르의 독립은 1999년 1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동티모르 주민들은 8월 30일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78.5%의 찬성을 이끌어 내면서 평화롭게,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현지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동티모르 전역에서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하기 시작했고 인구 100만명의 약 3분의 1이 몰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파병된 UN평화유지군에 의해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동티모르는 2002년 독립주권국가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6주년 독립기념 행사를 흥겹게 맞이하고 있는 동티모르에 아직도 평화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다.

불과 3개월 전에도 호세 라모스 호르타 대통령을 향한 반군의 암살 저격이 발생, 충격을 주었다. 총상을 입은 라모스 호르타 대통령은 5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2006년에는 무장 반군이 마을을 점령해 신생독립국의 취약한 군경과 맞서는 사태가 빚어졌다. 최소 37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한 소요 사태는 독립 선언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으며 교전을 피해 약 10만명이 난민 캠프로 피신하기까지 하였다.

산악을 거점으로 한 반군 세력은 수시로 폭력 사태를 촉발하거나 무장 공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생독립국의 전, 현직 지도자를 노리는 기습 공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반군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동티모르의 경제는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성인 절반이 할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신세다. 난민 캠프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구호 물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의 주민들은 독립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꺼지지 않는 희망으로 독립기념일을 경축하고 있다. 특별히 소요 사태가 없이 평온한 가운데 축제가 이어지는 분위기도 동티모르의 평화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달 29일에는 대통령을 저격한 무장 세력이 자동소총과 실탄을 반납하고 항복하는 소식도 전해졌다. 사경을 헤맸던 라모스 호르타 대통령은 그들을 용서하였으며 투항한 반군은 대통령의 손에 키스를 하며 ‘눈물의 화해’를 하였다.

그러나 동티모르의 현 상황은 UN평화유지군이 활동을 종료하기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UN군이 떠나면 동티모르는 다시 예전의 혼란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기 말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을 쟁취하며 21세기 최초의 신생국이 된 동티모르. 독립 6주년의 희망과 기대로 들뜬 그들에게 완전한 평화와 안정으로 깃들기엔 그리고 가난과 궁핍을 떨쳐 내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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