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포커스] 북핵의 불편한 진실

北영변 핵시설. / 사진 = 연합

평창올림픽(2018. 02.)을 기점으로 지난 6개월 여 동안 북한과 관련한 동아시아는 글이 현상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그리고 급박하게 사건이 시간을 이끌었다. 어쩌면 기존의 방식으로 흐름을 바꾸기엔 북한도 국제사회도 어려울 만큼 우리에게 ‘북한 문제’는 마치 ‘독이 든 성배’와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권마다 북한 문제는 때로는 ‘종북몰이’로 때로는 ‘평화정착’이라는 이름으로 상이한 스탠스를 취하였고, 이러한 우리의 변화는 우방과의 협력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다. 역동적인 시간이 흐르고 이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 현재, 한 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북핵의 기원’-에대해 논하고자 한다.

필자가 본 칼럼과 다른 자리에서도 공공연히 대두시켜왔던 ‘북핵의 기원’을 제기하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대전제를 대하는 자세에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데 방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핵을 가졌는가?

북핵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 북핵이 공격용인가, 협상용인가를 비롯해서 핵기술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 얼만큼의 플루토늄(Plutonium)을 가지고 있으며, 완성된 핵무기는 어느 정도인지, 그 기술의 원천은 어디서 기인하며 무엇으로 발전시켰는지, 현실화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온통 근거와 추측을 끼워 맞춘 이야기들은 북핵을 그동안 골방에 구겨 넣은 낡은 신문 다발처럼 골치 아픈 존재로 취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이야기보다 근거에서 유추한 역사적 관점에서 북핵의 기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1980년대 냉전 시대에서 1990년대 탈냉전기로의 전환기에 북한의 모습에는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가. 1980년대 당시 북한은 현재와는 다르게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교류와 교역 그리고 외교 관계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수출에 의한 경제 성장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남북관계에 있어 지속적으로 ‘평화협정’을 요구하였으며,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그토록 오랫 동안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주장하며 ‘고려연방제’를 주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지침과 언젠가는 아주 쉽게 멸망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혼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북한과 무역을 한 국가들이 UN에 제출한 보고서(as reported data set)를 정리한 UN Command에 따르면, 북한은 수출형 경제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국가들을 포함한 비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원자재와 완성품을 사고팔며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였고, 전후 재건을 위해 차입한 대금을 상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 탈냉전기로 들어서며, 나타나는 수치들은 재미있게도 중국에게 조중(북중) 관계에 대한 세간에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기존에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냉전기와 탈냉전기 사이에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반면, 구소련과의 무역 관계에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단절과 무역량에 불안정한 무역패턴을 보였다. 이는 북한에게 우방은 중국보다는 구소련이었다는 것을, 북한과 중국의 느슨한 관계는 오랜 시간 관계를 통해 신뢰를 확인하는 중국의 정치 문화적 특징과 종속관계를 경계한 조선의 의도가 함께 작용했으리라 보인다. 따라서 지난 30여 년 동안 무역에 관한 조중 관계는 큰 변화를 가지고 오지 않았고, 탈냉전기로 들어서며 조선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어려움은 국제 정치질서의 변화와 구소련의 부재에서 기인한 어려움으로 가늠할 수 있다.

한편 그동안 중국은 G2로 성장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는 ‘불편한 혹’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2018년 3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년 만에 아버지가 타던 기차를 이끌고 베이징을 처음 방문한 것은 중국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지 모른다. 1937년 4월, 김일성이 20명도 안 되는 소대원을 이끌고 로혹산을 넘어 도망가던 그 시절에 느꼈을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전우의 배신은 스스로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체사상’으로 나타난 것일까.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북핵은 태동하게 되었을 것이고, 북한은 ‘악의 축(Axis of evil_2002년 1월 29일)’, ‘국제사회의 문제아(2017년 9월 30일)’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3대까지 끌어오며 끈질기게 핵을 완성한 것 자체가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가치, 사상을 70년 이상 이끌어 왔다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북핵은 수출중심형 경제구조에서 추구한 안보와 국방의 문제이므로, 경제적 문제와는 별개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환원하면, 경제적 이유가 ‘북핵의 기원’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며, 국제사회에 대북경제제재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도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과 북한 모두 ‘비핵화 조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자는 의미인 것처럼 ‘체제보장’도 ‘북한이 계속 사회주의국가로 남는 것(미국의해석)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이 계속 북한을 영도하는 것(북한의해석)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 사항을 모두 포함하여 ‘북핵’을 재해석하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였음을, 항일투쟁에 대한 김일성의 기여와 북한의 역할에 대해 재평가 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상국가를 넘어 보통국가가 되길 원한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준비가 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을 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중 머리가 더 아픈 이는 김 위원장이다. 북한 내 강경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난 7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주장한 ‘북핵’의 존재에 대한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자신과 그를 목도한 인민들이기 때문이다. 70년 동안 고픈 배를 쥐어 잡으며, 생존과 같이 매달린 핵을 놓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인민들에게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자신마저 그 자리에 옹립할 수 있게 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사상적 가치를 스스로 고쳐야하는 입장은 트럼프의 입장에 비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 북핵을 포기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트럼프가 쌀밥에 고깃국을 차려주는 셈’이니 김정은 위원장 앞에 놓인 문제는 녹록지 않은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정치 사상적 모순으로 인해 소수의 몇몇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확인하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IMF 지원을 막겠다는 발표가 있는 시점에서 리용호 외무상이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예방(2018. 08. 08.)하였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 했던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란과 북한은 처음 대면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북한이 정상국가를 넘어 보통국가로 가는 데 미국의 역할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북한은 영원히 전쟁을 종식할 수 없을 것이며, 미국 또한 초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위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북한만한 새로운 파트너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오래전부터 북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또한 기회이기를 바라며, 평화의 운전대를 김 위원장에서 트럼프 대통령로, 그리고 중국과 한국과 공유하며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곧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며, 이즈음 시진핑 혹은 중국의 고위급인사가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70년 동안 묵혀 두었던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 우리는 서양의 정치문화와 동양의 정치문화와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서양의 정치문화에 ‘이면계약’이 없듯이, 동양의 덕(德)이 있는 정치적 유연성으로 결실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사상개조’가 아닌 ‘사상해방’만이 그들이 원하는 파라다이스를 완성할 수 있듯이, 근본적인 문제의 실마리를 위해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