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포커스] 대국의 조건과 북한 김정은의 현명한 선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왔다./사진=노동신문 캡처

로마를 세계적인 제국의 길로 이끌었던 한니발전쟁(B.C.218), 12척의 배로 37척을 이긴 한산도대첩(1592), 무적함대 펠리페 2세를 이긴 작은 섬나라 영국의 칼레 해전(Naval Battle of Calasis, 1588), 나폴레옹의 몰락의 계기를 마련한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 1805) 등 존재하는 영화 같은 역사적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 곳에는 승리한 전술과 전략, 번영과 발전을 위한 보이지 않는 지혜와 대국을 승리한 소국의 강건과 성패를 겪은 현재의 강대국의 리더가 있다. 21세기는 포와 총만이 전쟁의 무기가 아니듯, 협상과 타협이 새로운 무기고 공개된 전장에서 손을 마주잡는다. 전 세계의 역사학자들이 제시하는 대국의 조건을 살펴보면 모두 역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닉슨과 마오쩌둥과의 중국회담(1972),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아이슬란드 회담(1986)에서 그들의 악수는 이데올로기의 공유와 평화로운 공존의 서막을 알렸다. 그리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2018).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회담은 수많은 이슈로 전 세계의 TV를 점령하였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한 국가의 지도자와 신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의 지도자, 동양정치문화와 서양정치문화의 만남, 냉전시대에 성장한 남자와 탈냉전시대에 성장한 남자,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와의 만남, 그리고 20세기 이래 초강대국의 지도자와 이제 막 정상국가이길 바라는 지도자. 그러나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무수히 많은 반대와 우려, 불신과 비난, 그리고 위험을 뒤로 하고 손을 맞잡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2일은 세기의 3번째 악수가 이루어진 날이다. 이번 만남은 어떠한 합의문을 도출하더라도, 어떠한 형식을 취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만남이었다. 그는 다른 역대 대통령과 같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미룰 수 있었다. 국내 여론이 몰아치고, 각 기관의 수장들이 우려하고, 야당의 공세에 밀려들었다. 누구와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을까.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인터뷰에서 그는 한반도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상황이며,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미친 듯이 협상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10년 전의 자신과의 약속을 TV로 상영해주었다. 두 정상이 싱가포르로 날아오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어떠한 회담을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

그러나 이들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명시하는 대신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문구에 합의하였고,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표현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과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 미국이 이야기하는 ‘체제보장’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김정은의 체제보장은 ‘자신이 계속 북한을 영도한다’는 것을, 트럼프가 이해하는 체제보장은 ‘계속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 남는 것이 아닐까.

김일성은 정전협정을 위한 160번의 길고 긴 회담을 거치며 자신은 어느 정도 예감했으리라. 1932년부터 지루한 항일투쟁을 거쳐 1945년 광복,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새롭게 세워도 자신이 바라는 제국을 위해서 언젠가는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정리해야한다는 것을.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1954년 6월 15일에 당시 외무상 남일은 남북한 군축 및 전쟁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한 협정 체결을 제안한다. 그 뒤로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2차 회의(1956.11.07.),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1차 회의(1962.06.21.), 인민군 부총참모장 김익현의 남북군사당국자회담 제의(1977.02.08.),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남북미 3국 군사 당국자 회담 제의(1986.06.09.),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회의에서 김일성의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 제의(1986.12.30.)까지. 당시 남한은 ‘따귀 때린 놈이 화해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래에서 과거를 볼 수 있기에 그 때로 돌아가 ‘우리 앞에 오아시스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을 만큼 기나긴 사막을 걷고 있다.

대국이 소국을 상대로 패망한 사례, 소국이 대국을 상대로 승리한 사례는 어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영원한 번영과 발전이 담보된다면, 이기는 게임도 질수도, 지는 게임도 이겨야하기 때문이다. ‘촉새’같은 남한의 언론에도 묵묵히 견디며 뚜벅뚜벅 걸어 나왔듯이, 김정은은 진정성을 가지고 트럼프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수많은 만류에도 그 짐을 기꺼이 지고나온 트럼프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21세기 미국이 가야하는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宽容….Tolerance…. 김정은은 대국을 상대로 승리한 장수가 주변을 아우르던 관용이, 트럼프에게는 영원한 번영과 발전의 초석인 평화를 위해 ‘가치’를 실현한 승리한 대국의 장수가 가졌던 정치적 포용력의 관용이 필요하다.

제국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세계 유수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①단결된 민족주의 정신, ②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와 경제의 현대화, ③국민과 지도자 간의 상호신뢰, ④강력한 군사력과 내부의 응집력, ⑤견고한 내부국가제도 등이 그것이다.

남한의 보수는 100년이 걸린다는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였고, 진보는 민주주의의 걸음을 한 발 더 떼었다. 결국 보수와 진보가 함께 이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 것이다. 슬프고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역사의 상처를 이제 다시금 감싸고 일어나야 한다. 국제사회로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을 이끌어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트럼프는 학습이 빠른 사람이다. 대선에 나선 그의 얼굴과 대통령이 되고 나서의 얼굴, 그리고 지금의 얼굴…. 그는 지금 미국의 대통령으로 완성되고 있는지 모른다. 비아냥거리는 조롱과 정치적이고 수세적인 공격에 때로는 실망과 실소를 주기도 했지만, 최소한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어느 미국의 지도자들보다 가볍지 않으며, 우습지 않다.

김정은 또한 선대의 그의 수령과 영도자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대범하고 용기 있으며 현실적이고 진솔한 지도자임이 증명되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멀고 지치는 가시밭을 걸어가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 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것이 ‘개변하는 북한의 새로운 모습’을 위해 어떻게 작용할지를 더 보여주어야 한다.

조국을 위한 숭고한 죽음은 아닐지라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꿈을 우리라고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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