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경제관계 발전과정 통해 본 한반도 통일과제

독일의 분할점령에도 불구하고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 수뇌들이 독일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취급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서독 지역 간에는 계속 경제관계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경제교류는 무역, 용역거래, 공공부문의 이전지출, 금융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연간 교류규모는 약 2,219억 마르크(약 75억 달러)에 달했다.


동독은 서독과의 경제교류에서 공식거래(연 8억 달러)와 비공식지원(연 15억 달러)을 합쳐 연 평균 52억 마르크(23억 달러)의 이익을 얻었으며, 경제교류는 민족의 결속을 유지하고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서독 경제관계의 발전과정


2차 대전 전승 4대국은 포츠담 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점령지 분할 후에도 전체 독일을 단일 경제단위로 취급함으로써 1948년 6월 동서독의 화폐개혁과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약 1년간 교역이 중단되었을 뿐 분단 후에도 경제교류는 지속되어 왔다. 1951년 9월 베를린 협정을 계기로 내독교역은 다음 원칙하에 추진되도록 정착되었으며 통일 시까지 기본골격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첫째, 교역과 거래는 수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둘째, 모든 거래는 허가와 공고절차를 거친다. 셋째, 독일이 원산지인 상품만 거래하며 외국산은 특별허가가 필요하다. 넷째, 지불은 중앙은행간 청산계정을 통해서만 청산하며 구상무역을 불허한다. 다섯째, 중앙은행 간의 결재수단은 VE(서독 1마르크에 해당)로 한다. 여섯째, 서독 측은 동독상품의 가격을 검토한다. 일곱째, 교역품은 관세 및 유럽경제공동체(EEC) 농산물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내독 경제관계는 1950년대까지는 냉전의 영향을 받은 데다 서독이 대동독 경제관계가 동독경제력 강화에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서구 국가들의 대동유럽 경제관계가 강화된 것을 계기로 서독이 보다 전진적인 자세로 전환한 데다, 1972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 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서독의 재정지원, 정부간 협정에 의한 이전지출, 민간분야 지원확대 등을 통해 거래분야도 다양해지고 거래량도 대폭 확대되었다.


분야별 경제교류 실태


1975년부터 1988년까지 14년간의 실적을 개관하면 용역거래 2,040억 DM(927억 달러), 일방적 이전지출 179억 DM(85억 달러) 등 총 2,219억 DM(1,012억 달러)로서 연평균 159억 DM(약 75억 달러)에 달하며, 연 평균 무역거래는 110억 DM(52억 달러), 용역거래는 35억 DM(16억 달러)에 달한다.


동서독 경제교류 실적 개관(1975~1988)
                                                                                                  (단위 : 억 DM)



































분야


반출


반입


수지


비고


물품 거래


774


772


+2

무역거래

용역 거래


209


285


-76

여행 및 우편 일괄금

이전 지출


 


179


-179

통과여객 일괄금, 환영금


983


1236


-253

총 거래금액 : 2219


1975년부터 1988년 간 매년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액을 보면 정부간 협정에 의한 이전지출과 재정지원 등 공식거래 수지에 의한 이전액이 17억 4,000만 DM, 비공식 지원액 34억 6,000만 DM으로 매년 총 52억 DM(23억 달러, 약 3조 1,200억 원)이 동독으로 흘러들어 간 셈이다. 동독에 대한 재정지원에는 ①교역을 위한 채무청산용 차관(swing), ②내독 거래범위 내 상업적 대부, ③ 정부보증 하의 은행 재정차관 등이 포함되며 실제 현금이 지원된 것은 1983~84년 기간 중 단 2회 19억 5,0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한 것이 유일하다. 정부간 협정에 의한 이전지출은 ①통과여객 일괄금, 철도·도로 사용료, 도로 보수비 등 통행분야 이전지출, ②우편·전화 사용료, 전화선 설치 투자 등 통신분야 이전지출, ③기타 서독-서베를린 간 도로건설 비용, 환경시설 개선비용, 쓰레기 처리 용역비 등이 포함된다.


비공식 지원 가운데는 ①서독인 동독방문 시 의무 환전(연 10억 DM), ②서독교회의 동독교회 지원(연 8.500만 DM), ③ 정치범 석방대가 지불(연 1억 3.000만 DM), ④서독인의 동독 면세점 물품구입(연 5억 DM), ⑤동독인 서독방문 시 제공된 금품(액수 미상), ⑥서독인 동독방문 시 제공된 금품(연 10억 DM), ⑦독인이 동독으로 발송한 소포물품(연 7억 5.000만 DM) 등이 포함된다.


동서독 경제관계의 특징


동서독 간의 경제관계는 동서독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법적·제도적 측면에서는 외국도 국내도 아닌 “특수 관계”에 의한 교류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서독 측에서는 동독을 외국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동독과의 교역을 대내무역으로 취급하여 서독 내 소비, 서독 시장가격, 원산지 독일 등의 조건에 해당하는 물품만을 교역대상으로 하고 상공회의소 산하 내독무역신탁사무소에서 관장했다. 동독은 서독과의 거래를 철저히 외국과의 거래로 간주하여 관련 업무를 대외무역성에서 취급하고 거래금액도 대외무역 통계에 포함시켰다.


둘째, 금지원칙 하에 일정조건 하에서 허가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서독정부가 각종 거래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셋째, 결제는 양측 은행이 청산하고 거래자 간의 직접결제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역시 서독정부가 내독거래를 철저히 통제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넷째,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 시에는 ①동독이 먼저 요청을 할 때, ②반드시 대가를 받은 후, ③동독주민들이 서독의 지원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지원한다는 등의 세 가지 원칙을 준수했다는 점이다, 다섯째, 1970년대 이후부터는 민간거래에 대해서는 철저히 정경분리 원칙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동독과의 경제교류에 있어서도 철저히 시장원리를 적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째, 유럽공동체(EC)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해 국내거래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출범 당시 아데나워 총리가 통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요청하여 승인을 받은 것으로 평소 내독교역에는 물론, 1990년 7월 동독과의 사회경제화폐 통합 시 유럽공동체(EC)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일곱째, 경제교류 여건을 활용하여 동독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1960년대에 수차례 시도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에는 시도하지 않았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경제적 이득을 위해 체제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독 경제관계의 의의와 평가


내독 경제관계에서 동서독이 가지는 의미는 서로 달랐다. 서독입장에서 경제적 의미는 극히 미미했던 반면 정치적 의미가 매우 중요했다. 동독과의 교역량은 서독 대외무역의 1.5%에 속하여 노르웨이, 리비아, 스페인 다음으로 15위를 차지했고, 동독과의 교역 종사인원은 7만 명으로 총 취업인구의 0.3%에 불과했으며, 자본거래액도 45억 VE(1985년)로 전 세계 대출액의 0.55%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내독교역은 ①민족적 유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상호 적대감의 완화와 민족의 동질성 유지에 기여했고, ②교통, 통신, 왕래를 촉진하고 동독 정부의 각종 통제조치의 완화를 유도하여 분단에 따른 고통완화에 기여했고, ③동독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고, ④베를린 정세의 안정과 서베를린 왕래 보장에 기여했으며, ⑤서독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동독 공산정권의 정통성의 기반을 잠식하여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⑥서독의 관대한 지원이 동독주민들의 호감을 유발, 동독혁명 후 서독에의 가입을 선호하게 된 배경의 하나가 되었고, ⑦동독의 동유럽 경제권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여 통일 후 통합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동독의 입장에서는 서독과의 경제교류가 체제유지에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는 ①서독이 소련 다음의 제2위의 교역대상으로 서독과의 교역이 대서방 교역의 36~50%를 차지했고 특히 섬유, 의류, 유리, 도자기의 경우 대서방 수출의 3/4를 차지했고, ②서독과의 경제거래가 국민총생산(GNP)의 3%를 차지했으며, ③거래비용의 절감과 서독의 경제지원이 동독경제에 크게 기여했으며, ④품귀상품, 서방기술 및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채널이 되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서독과의 협정체결과 경제거래가 동독의 국제법적 지위향상에 일부 기여하기는 했으나 ①경제교류를 통해 서독사회에 대한 동경심이 높아져 동독체제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②동독이 외국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한 서독 측의 “특수 관계” 요구가 외교적 부담이 되는 등 체제유지에 부담요인이 되기도 했다.


내독 경제관계의 부정적 측면으로는 동독 공산정권의 안정에 기여한 반면, 동독정권의 변화와 동독 주민의 인권개선에 미친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동독에 대한 경제원조는 동독 탈출자에 대한 동독의 핍박을 줄이는 데는 전혀 효험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냉전시기에는 동독이 경제사정 악화로 불안정해졌더라도 유럽의 긴장고조와 동독주민의 고통심화의 원인이 되었을 뿐 동독의 붕괴나 독일통일로 연결되기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내독 경제교류는 긍정적 측면이 더 많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결론적으로, 내독 경제관계는 동독 공산정권의 안정에 도움을 주었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내독정책 목표인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의 완화와 민족 동질성 유지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통일에도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동서독 경제관계와 남북한 경제관계의 비교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동서독 경제관계와 남북한 경제관계는 ①상대방을 외국으로 취급하지 않고 “특수 관계” 또는 “민족내부 거래”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 ②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일정 조건하에서 허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③원칙적으로 원산지가 상대지역인 상품에 대해서만 교역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 ④원칙적으로 경제거래에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 ➄무역관계가 전형적인 저개발국과 선진국 간의 보완무역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점도 많다.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남북간의 교류는 ①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되어 위험부담이 높고, ②간접교역의 형태로 이루어져 거래비용이 높으며, ③중앙은행간 청산계정이 아닌 직접결제가 이루어져 뒷돈 거래 여지가 많고, ④주요 국가로부터 국내거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서독 교류와 차이가 있다.


교류실적 면에서 남북 간의 교류는 ①독일에 비해 교류분야가 많지 않고, ②한국이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③북한의 폐쇄적 태도 때문에 지리적 근접성과 언어·문화면의 동질성이 갖는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고, ④경제지원시 그 대가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⑤경제교류가 정치관계의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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