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軍통합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

반세기를 상호 반목과 대립속에서 공존했던 동서독 통일의 최우선 과제는 양국의 군(軍)을 무리 없이 통합해내는 일이었다. 군이야말로 물리적 힘을 소유한 실체로서 순탄한 군 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면 양국 간 통일의 의미가 모두 상실되기 때문이다.

동서독 군통합의 특징은 독일 통일과 관련된 미묘한 대외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전쟁의 패배와 히틀러의 무조건 항복으로 상실된 주권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군 통합을 주도할 수는 없었다.

콜 총리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주창해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낸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인물로 파악하고,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했다. 그는 연이어 모스크바를 찾았고, 개혁 작업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고르바초프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며 독일 문제에 대한 소련의 양보를 요청했다. 당시 서독은 개혁을 위해 서방세계가 지원한 총액에 버금가는 6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집념과 의지로 소련의 양보를 얻어낸 서독은 연이어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양보와 동의에는 쉽지 않은 조건들이 전제되기는 했지만 당시 이 역사적 일을 이뤄낸 콜 총리에 대해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야당인 사민당 지도자들도 존경을 표한 바 있다. 서방세계와 이웃국가 폴란드가 동서독 통일을 독일민족에게 위임하며 국방 및 군사력과 관련해 제시한 조건에는 통일 후 대(對) 폴란드 국경인 오더-나이스 국경에 대한 인정▲통일 독일의 군사개입은 헌법과 유엔 헌장의 규정을 준수해 집행▲ABC(원자·생물·화학무기) 사용 금지▲통일 후 병력을 94년도까지 37만 명으로 축소▲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 등이 있었다.

서독은 국방부 소속 군 통합 대비단을 설치해 인민군 인수 작업을 추진했다. 우선 6개 사단의 인민군 병력을 6개의 여단 규모로 축소 조정했다. 통합 대비단은 동독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서 통일 조약의 발효일로 설정한 1990년 10월 3일까지 인수에 필요한 작업들을 추진했다.

당시 스톨텐베르그 국방장관은 통일과 함께 동독에 지휘사령부를 설치해 동독군을 지휘토록 하고, 공식적으로 동서독 전 지역을 방위권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만에 인민군의 인수 작업을 마무리 했다. 동독 인민군의 인수 절차는 다음과 같은 원칙 하에서 이뤄졌다.

첫째, 편입의 원칙이다. 이 원칙의 근거는 “동독 인민군은 동독의 서독 편입과 함께 연방군에 소속된다”는 통일조약 부록으로 동독 인민군의 인수 작업의 기조를 이뤘다.

둘째, 배제 및 평가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동독 군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장군, 제독들을 포함해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핵심 간부들을 편입과정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적지 않은 군인들의 일자리 문제와 관련돼 6개월간의 시한을 두고 심사와 평가에 만전을 기해 추진됐다. 그리고 누락된 군인들에게는 새로운 직장을 위한 직업훈련 교육을 받도록 했다.

원칙에 충실했지만 원칙 내에서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뤄낸 동서독의 군통합은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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