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외교게임 ‘마지막에 웃는 자’ 누구인가?

16일 북한은 대일, 대중, 대남 대화에 이어 미국에게도 양자 회담을 요구했다. 지난번 이 칼럼에서 지적한 ‘앵벌이식 외교’다.


북한의 대외 전략은 언제부터인가 ‘전략적 통찰력’이 없어졌다. 전략과 전술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로지 눈앞의 국면을 타개하려는 대증(對症)요법밖에 없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하나의 성명서 안에서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고 한다. 마치 만화 같은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가 미-중 정상회담 이후 수면 아래의 긴장상태에 들어가 있다.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세는 또 굽이칠 것이다. 


어차피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 직전 중국에게 “조선반도도 대화 분위기로 들어갑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땜빵용’으로 남북대화를 한차례 이용했다. 또 북한 당국은 혹시나 박근혜 정부가 물렁하여 돈도 좀 얻어내고 6·15 공동행사로 남조선 내부나 좀 흔들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부가이익 아니겠나 싶었을 것이다. 


북한이 당국회담을 무산시킨 이유는 ‘격(格)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진정으로 회담을 원했다면 우리 정부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다. 북한이 마음을 먹으면 ‘격’을 맞추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인구 5천만 명을 대표하는 ‘남조선 통일부장관’을 상대로 인구 2500만 명 대표로 김양건 중앙당 통전부장을 내보내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도 어렵겠는가?


이번에 북한은 중국의 ‘한반도문제 대화로 해결’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외교 고립을 탈출하기 위해 對중국용 “남북대화 제스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북한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회담을 하고, 이익이 안 되면 회담을 안 한다. 남북 간에 ‘진정성 있는 대화’ 운운하지만, 북한에게는 원래 그런 것이 없다. 남북회담은 본질적으로 진정성을 갖기 어렵고, 쌍방은 ‘진정성의 얼굴을 한 전략 게임’이 존재할 뿐이다.


북한의 전체주의 선군 수령제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사이에 ‘진정성 있는 교집합의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 북한의 수령제는 남조선 언론들도 ‘최고 존엄’ 앞에 머리를 숙이라며 제정신 아닌 주장을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에게 ‘최고 존엄’은 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일 뿐이다. 남북 간의 이 차이는 북한이 적어도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반(半)민주 체제’로 진보하지 않는 한 ‘진정성 있는 교집합’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북한이 늘상 들고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민족끼리’다. 여기에는 남북 사이에 ‘같은 민족’이라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북한 당국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세습정권은 이 ‘민족’ 대목을 활용해서 남북 7500만 민족 전체에게 눈속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속칭 ‘反외세 민족자주’ ‘反美 자주화’의 구호도 남북, 미중 사이의 역사관계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사실상 북한 세습정권이 자신들의 치부(恥部)를 감추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야한 란제리’ 비슷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일 뿐이다. 청년 시기에는 이 ‘자주’라는 단어에 금방 넘어간다. 인류의 사회역사가 어떻게 진보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진보’라는 단어가 좋아서 스스로를 진보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어쨌거나, 지금 한반도 정세는 전환기에 들어가 있는데,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이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최근의 정세 변화를 점검해보자.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아태지역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으로써의 한미동맹, 미국의 방위공약 재확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 북핵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동북아 및 글로벌 협력 등이 확인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지했다.


5월 14일~17일 북한을 방문한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 관방 참여(총리 자문역)는 “평양에서 일북 수교 협상 재개 등과 관련한 사무적 협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5월 22일 북한의 최룡해 군 총정국장이 방중하여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문제 해결”을 던져놓았다.


6월 7, 8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 북한 미사일 문제 등은 양국이 공동 협력할 도전 과제”라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북핵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지역의 핫이슈 처리에 있어서 양국 간 협력”을 제시하였다.


미중 정상회담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미국 측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이 북한의 비핵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협력과 대화를 강화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미중 양국의 방법론에서도 같은 입장과 목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6자회담을 재개하거나 미북 대화를 하려면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는데, 중국은 미국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중국측의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는 정상회담 공식평가 발언에는 빠졌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같은 입장과 목표가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다시 말해 중국은 ‘先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한번도 꺼낸 적이 없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센터 이기현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브리핑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 곳이 있는데, 북핵 의제와 관련 현재 상황에서 급선무는 빠른 대화 회복이며, 이에 대한 협력을 중국이 희망했다는 점”(통일연구원 온라인 시리즈 CO 13-17)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중국 입장은 ‘빠른 대화의 회복’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미국과 중국은 기존 입장을 반복했을 뿐 특별히 새로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긴장의 책임이 북한의 군사도발과 함께 미국도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앞으로 중국의 입장이 ‘先 북한 비핵화 조치’가 될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최룡해가 던져놓은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련 문제 해결”을 확대 해석하여, “북한 비핵화 조치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보장 체계(평화협정)를 동시에 진행하자”며 중국 입맛대로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先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야 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도 ‘북핵 비확산(non-proliferation)’이 아니라,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북핵 폐기'(abandoning all nuclear weapons and existing nuclear programs)임을 쌍방이 재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서 ‘동북아 평화’는 ‘북핵 폐기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지해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북의 비핵화와 개혁개방, 한반도 평화협정, 미군 철수, 장기적으로 한반도 전체의 친중국화일 가능성이,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가장 높은 편일 것이다. 또 상황이 악회된다 하더라도 김정은 체제의 붕괴와 같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맞아 미군이 압록강-두만강까지 진격하는 경우는 막으려 할 것이다.     


최근 방한한 중국의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이 15일 ’21세기 한중교류협회’에 참석하여 “김정은이 군과 당을 장악했기 때문에 섣불리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김정은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탕의 이 발언이 북한 내부 실정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김정은 체제가 견고하니까 한국은 ‘통일’보다 ‘평화공존’에 중점을 두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중국의 희망사항을 은연 중 강조하기 위한 외교적 발언인지, 애매한 점이 있다.


고(故)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국제비서는 “중국의 외교능력은 5천 년 동안 쌓여져온 것이다. 중국의 외교 주머니는 10개나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성질이 급한 쪽은 중국이 절반의 주머니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가떨어진다고 했다.


중국과의 외교 협상은 정말로 ‘마지막에 웃는 자의 게임’이 될 것으로 본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중국은 미국에게 지지않는 데(비기는 데) 일단은 성공한 것 같다.


고려의 장군 서희(徐熙)는 거란의 소손녕과 외교적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에서 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를 손에 넣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서희 장군’이 나와서 창조적이고 스마트한 對중국 외교로 하루빨리 북한 수령체제의 변화를 견인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남, 북, 미, 중, 일, 러의 길고 지리한 외교적 전략 게임이 전개될 것이다. 보는 시야가 좁고 성질이 급한 쪽은 이 게임에서 지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선전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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