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사건 연루자 한-독 비밀합의로 석방”

독일에 살고 있는 원로 의사 이수길(79) 박사는 과거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이 모두 석방된 것은 한국과 서독 정부간 비밀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는 이 박사는 2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1969년 1월 서독 정부는 한국에 특사를 보내 동백림 사건으로 형이 확정된 7명을 독일로 돌려보내는 대가로 한국에 예정대로 차관을 제공하고 독일 거주 한국인들의 친북 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와 같은 외교 비화는 지난해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서도 사실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독일 및 프랑스로 건너간 유학생, 교민 등 194명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면서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 적화활동을 했다고 발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공안사건이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정보부 요원들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혐의자들을 강제로 연행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이들 국가와 외교적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 박사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 `개천에서 나온 용’에서 동백림 사건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비롯해 이 사건의 외교적 파장과 비밀 교섭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 책에 따르면 한-독 합의에 따라 1969년 2월부터 1970년 광복절 사이에 동백림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석방됐다.

서독 정부는 동백림 사건 발생 이후 한-독 차관 협정에 의한 7천만 마르크의 대한(對韓)원조 차관을 거부하고 고위급 접촉을 중단하는 등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서독에서 납치된 관련자들이 모두 석방된 후 서독 정부는 1972년 11월 한.독경제원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3천5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했다고 이 박사는 전했다.

한편 이 박사는 한국 광부를 독일로 파견하기 위한 논의는 장면 정권 당시인 1961년 주한 미국경제원조기구(USOM)의 중개로 시작됐으며 한국 정부와 독일연방석탄산업회사 간의 협상이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1961년 `5.16 쿠데타’로 협상이 갑자기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후 1963년 말 박정희 정권에서 광부 파독이 시작됐으나 이는 새로운 협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기존의 논의를 재개한 데 따른 것이라고 이 박사는 지적했다.

이 박사는 또 1960년대 한국 간호사들의 독일 취업은 양국 정부간 교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과 민간 단체들이 독일 의료기관과 직접 협상을 통해 이뤄낸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국 간호사의 독일 취업을 주선한 이 박사는 한국 정부가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간호사를 파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1959년 독일에 온 이 박사는 독일 소아과 및 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과 마인츠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 1974년부터는 마인츠에서 소아과 의원을 개원해 지금까지 진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