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관련인사 황성모 교수

“간첩 한 번 돼 보십시오. 주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는 1992년 8월28일에 실린 중앙일보 연재기사에서 고 황성모(黃性模.1926∼1992) 교수의 부인이 세상을 향해 내뱉은 원망이자 절규였다.

이 인터뷰에서 그의 부인은 남편이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1967년, 소위 ’동백림’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간첩’으로 몰렸을 때의 험악한 분위기를 부연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각 신문에 남편이 ’간첩 황성모’라는 이름으로 사진까지 실려 보도되자, 친구와 친지의 전화가 뚝 끊겼는가 하면, 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도 질겁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고 황성모 교수는 1967년 8월25일 소위 ’민비연(民比硏)’ 사건이라 해서, 정부 당국에 의해 이 모임이 합법을 가장한 반국가단체로, 자신이 핵심 주동자로 몰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그는 징역 2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민비연’이란 그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조직한 연구 모임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民族主義比較硏究會)’의 약칭이다.

여기에는 ’6.3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박범진 전 국회의원, 이종률 전 국회 사무총장, 김학준 현 동아일보 사장 등이 학생으로 참여했다.

전 국회의원 김경재 씨에 의하면 이 ’민비연’ 학술 세미나에서 황 교수가 “헝가리 의거는 부패한 지도자에 대한 항거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을 빌미로 중앙정보부가 간첩사건으로 조작하고 황 교수를 비롯한 7명을 구속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황 교수가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을 하라’고 (김 전의원에게)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시인 김지하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최근 월간중앙에 연재된 회고록에서 김지하는 1970년대에 내설악에 갔다가 황 교수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밝히고 당시 황 교수가 박정희 정권을 파시즘 정권이라 비판했으며 어려움에 처한 자신에게 “자넨 죽지 않아! 절대로!”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경남 사천 출생인 황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1957년 서독으로 건너가 1960년 11월 뮌스터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귀국 직후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모교인 서울대로 옮겼으며 동백림 사건 이후 중앙일보 동서문제연구소에 관여하기도 했다.

충남대를 거쳐 1982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옮겨 1991년 이 곳에서 정년퇴직했다. 퇴직과 함께 잠시 인제대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이내 타계하고 말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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