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관련인사 화백 이응노

충남 홍성 출신인 이응노(1904∼1989) 화백은 1922년 김규진 문하에서 사군자를 익혀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제시대 대나무 그림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전통회화로 주목받았다.

당시 경직된 화단에 불만을 품고 1958년 이화여대 출신 제자이던 박인경(82)씨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콜라주, 문자추상, 군상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연작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67년 6.25전쟁 중 월북한 양아들 이문세(작고)씨를 만나기 위해 동베를린으로 갔다가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렀고 1977년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를 북한으로 납치하려 했다는 정부의 발표로 ’미치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1983년 프랑스 국적을 획득해 1987년 평양에서 작품전을 갖고 양아들 이문세씨와 재회하는 감격을 누렸다. 시대가 변해 1989년 호암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나 개막 당일 숨져 이국땅 파리의 장 블랭 사원에 묻혔다.

이 화백을 기리는 작업은 미술계와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전시는 대전시립미술관 옆에 고암 이응노 미술관을 2007년 초 설립하기로 하고 지난 해 9월 기공식을 가졌으며 10월에는 파리에 있는 이 화백의 부인 박인경 여사로부터 이 화백의 작품 106점을 기증받았다. 서울 평창동에 있던 이응노 미술관은 작년 7월로 문을 닫고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으로 국내 전시공간을 집중하게 됐다.

또 충남 홍성군은 이응노 화백의 생가 인근에 2009년 이응노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부지 매입을 마친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04년 11월 이응노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덕수궁 미술관에서 초기부터 말년까지 대표작 150여점을 기리는 회고전을 가졌다.

파리 교외에 1993년 이응노 기념사업을 위해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전통 한국식 기와집 고암서방을 박인경씨가 관리하고 있다.

이응노 화백은 슬하에 자식을 남기지 못했으나 어려서 입양한 또다른 양아들 이융세(48)씨가 박인경 여사와 함께 파리에서 화업의 길을 걷고 있다.

이 화백의 월북한 양아들 이문세씨의 자식으로 이 화백의 손녀, 손자가 되는 경인(59), 종진(57)씨는 분당에서 살고 있다.

5형제 중 넷째인 이응노 화백의 바로 손위 형 이봉노(작고)씨의 아들인 조카 이강세씨는 이화백의 권유로 회화에서 도자기로 전공을 바꿔 35년째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도예가로 평택에 작업실을 짓고 살고 있다.

이 밖에 이응노 화백 막내동생의 아들인 이희세(74)씨도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가 숙부의 동백림 사건 연루로 국가보안법 등에 걸려 고국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지난 해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41년만에 고국땅을 밟기도 했다.

도예가 이강세씨는 26일 국정원의 발표에 대해 “유족들이 이번 발표를 관심을 갖고 기다려온 것이 사실”이라며 “당연히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반겼다.

그는 또 “오늘 저녁이라도 국내에 있는 유족들을 모아 기쁨을 나누고 파리의 숙모님과도 교신할 것”이라고 기뻐했다.

이씨는 파리의 박인경 여사가 최근 이화백의 작품을 정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신은 올해안으로 충남 홍성의 이응노 생가 인근에 있는 예산의 선산 근처로 도자기 가마를 옮겨 작업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응노 미술관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대전시립미술관 측도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발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두달간 몸을 추스렸던 충남 예산의 수덕여관이 이화백의 본부인인 박귀희씨가 2001년 작고한 후 방치돼오다 이화백의 조카 종진씨에 의해 올해초 수덕사에 팔렸다.

수덕여관은 이화백이 여관 뒤뜰 바위에 추상문자 암각화 2점을 새겼으며 여류화가 나혜석이 말년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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