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관련인사 시인 천상병

동백림사건 당시 고초를 겪었던 시인 고 천상병의 미망인 목순옥(69)씨는 26일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라고 환영했다.

목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이런 억울한 일로 고초를 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또 억울한 사연들은 모두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상과대를 중퇴한 천상병(1930∼1993) 시인은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 11집에 시 ’공상’ 등을 추천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52년 ’문예’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것을 계기로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던 시인은 특히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을 담은 시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그는 1967년 간첩 혐의를 받고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고문과 취조를 받은 끝에 거의 폐인이 돼 기인 같은 생활을 하다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것은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강빈구 당시 서울대 상대교수로부터 “동독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고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1967년 7월 어느 날 밤 11시 명동에 있는 조남철 선생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중앙정보부 직원 2명에 의해 이문동 중앙정보부 사무실로 끌려갔다.

부인 목씨는 “당시 남편은 동독을 다녀오는 것이 큰 죄가 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며 “그냥 나가자니까 술이나 한잔 얻어먹을 생각에 따라 나섰다”고 말했다.

천상병은 6개월 동안 갖은 고초를 겪었다. 중정 요원들은 간첩활동을 실토하라며 수차례 전기고문을 가했고 강빈구 교수로부터 막걸리 값으로 빌렸던 돈을 ’공갈로 빼앗은 것 아니냐’며 추궁을 당해야 했다.

목씨는 “남편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 부산에 있는 형님 집에서 요양을 했지만 곧 후유증으로 쓰러졌다”며 “그 뒤 8개월 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원에서도 늘 기저귀를 찬 채 생활해야 했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고 퇴원한 후에도 정보형사들이 항상 감시를 해 불안한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과거의 쓰라린 일들을 회고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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