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건달’ 유승남이 하루아침에 北 ‘노력영웅’ 된 사연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도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지불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왔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선전 선동이 동원되고 전국 각지에서 모범을 창출해 따라배우도록 하는 ‘영웅’ 만들기가 진행됐다. 노동으로 국가에 충성하는 ‘노력영웅’ 롤모델을 제시해 전 주민들은 따라 배우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영웅은 드라마틱한 사연이 많을 수록 그 존재감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평안남도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 칠리탄광 차광수청년돌격대 대장 유승남도 영화속 주인공 같은 사연으로 북한 전역에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는 북한에서 손꼽히는 최대규모의 석탄생산기지로 수만 명의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다. 안주탄광에서 생산된 유연탄은 평양화력발소와 평안남도 북창화력발전소등으로 보내진다. 지난 ‘150일 전투’ 기간 김정일이 현지지도에 나설 만큼 북한에서는 핵심 탄광으로 꼽힌다.

1998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는 유승남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졌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안하고 동네 불량청년들의 우두머리 짓이나 하던 ‘개조대상’ 유승남은 199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중앙위원회로부터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실제 별명은 ‘빽자루’였는데, 권투 선수들이 사용하는 샌드백(sandbag)을 뜻하는 북한의 은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주탄광에 배치받은 유승남은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던 건달이었다. 가족들은 그를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했고, 직장에서도 손사래를 치던 골치덩이였다.

한번은 유승남이 벌인 패싸움에서 사람이 죽으면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복역 7년만에 대사령(사면복권)을 받고 석방됐고, 안주탄광의 당 비서를 만나면서 ‘공산주의형 인간’으로 새롭게 거듭난다.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참회하고 ‘당과 지도자’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탄광 당 비서의 지도 아래 동네 불량청년들을 규합해 ‘돌격대’를 조직하고 국가로부터 할당된 3년간 석탄생산계획을 초과 수행하는 공을 세워 ‘노력 영웅’ 칭호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2004년 안주시를 가보니 현실속의 유승남은 영화속 주인공과 너무나 달랐다. 안주시장 거리에서 목격한 유승남의 실체는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일종의 ‘보증수표’와 같았는데, 마피아같은 존재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안주시장 골목에서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빈 마대를 갖고 시장거리를 활보하며 유승남의 이름으로 물건을 얻으러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청년 무리가 안주시장 매대를 돌며 장사꾼들에게 “오마니, 빽자루가 물건 좀 달랍니다”고 말하면 순식간에 50㎏짜리 마대 2~3개가 가득찼다. 장사꾼들은 그들이 “그만”이라고 말 할 때까지 술, 담배 뿐만 아니라 마른 오징어, 마른 명태, 땅콩과 같은 술안주감을 마대에 가득 채웠다. 알고 보니 그 청년들은 유승남의 부하들이었다.

장사꾼들은 유승남의 부하들에게 무엇을 얼마만큼 바쳤는지 메모만 해두면 됐다. 매대 상인들은 이렇게 먼저 물건을 주고 나면 며칠 후 유승남이 나타나 현금 석탄으로 값을 치룬다고 말했다.

유승남은 러시아 까마즈사에서 만든 15톤짜리 화물차를 몰고 다녔는데, 유승남이 시장 거리에 나타날 때 마다 화물차에는 안주탄광에서 생산되는 석탄이 가득 차있다는 것이다.

2004년 당시 안주에서 석탄 1t에 북한 돈 500원 정도였다. 석탄 산지라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매우 쌌다. 당시는 입쌀 1㎏이 500원이었고 마른 오징어나 마른 명태는 1마리에 50원이었다.

그러니 유승남이 15t의 석탄을 실고 나와 장사꾼들에게 t당 500원씩에 넘겨주었다면 15t에 7500원 꼴로, 결국 석탄 1t이 오징어 10마리 값이었다.(지금 북한에서 석탄 가격은 2004년과 완전히 다르다. 대도시에서 밀매로 거래되는 석탄은 1t당 6~7만원이며, 탄광주변에서의 도매가격도 1t당 3만원대 수준이다.)

유승남은 역시 같은 방법으로 석탄 1t만 장사꾼에게 주면 술 30리터는 족히 챙겨갈 수 있었다. 북한의 도시에서 한가정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보통 석탄 3톤은 있어야 한다. 결국 유승남은 일반 가정에서 4~5년은 족히 땔 수 있는 석탄으로 자신의 술상을 차린 셈이다.

장사꾼들은 유승남에게 받은 석탄을 함께 팔아 돈을 분배해 가진다. 그런데 유승남은 자신이 가져간 물품량에 비해 2~3배 되는 양의 석탄을 주는 대담함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장사꾼은 단 한명도 없었다.

북한에서 석탄은 중요한 국가재산이지만 ‘영웅’ 유승남의 손에 의해 이렇게 시장에 뿌려지고 있었다.

유승남의 사생활과 관련해 또 다른 에피소드는 그의 아내다. 그가 교화소에서 출소 한 이후 한창 불량청년들의 두목노릇을 하던 시절, 안주시내 중학교에서 수학교원을 하고 있던 한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집안도 괜찮았고 학생들 속에서 인기도 많았던 여선생이었다.

모범교원인 그녀가 소문난 망나니의 구애를 쳐다볼 리가 없었다. 마침내 부하들을 시켜 퇴근하는 그녀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교화소를 다녀온 전과자가 멀쩡한 교원을 납치하는 일은 북한 사회에서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안주탄광 당 비서가 나서서 여선생과 여선생들의 가족을 설득했고, 결국 유승남의 짝사랑은 성공하게 됐다.

그녀는 결혼 조건으로 유승남에게 ‘사람답게 살겠다’는 약속을 요구했다. 유승남은 불량배 시절부터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입으로 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점이었다. ‘결혼하면 사람답게 살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돌격대를 조직해 열심히 일했고 끝내 영웅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안주 사람들이 ‘빽자루’에 대해 말할 때면 ‘상급을 잘 만나야 사회생활이 편다’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사람구실 한다’는 격언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하지만 ‘영웅’이 되었어도 술 마시는 버릇은 여전했다. 한 두병은 성에 차지도 않았다. 500㎖짜리 술 서너명은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특별히 술 장사꾼들에게 부탁해 북한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18도짜리 술보다 훨씬 도수가 높은 술을 구해다 먹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만큼 주사(酒邪)도 대단해 일단 취하면 그 누구도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누가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주먹이 먼저 앞섰다. 술취한 ‘빽자루’ 앞에서는 숨도 크게 못 쉰다는 것이 안주사람들의 말이었다.

유승남이 두려워 하는 사람은 오직 탄광 당비서와 아내뿐이었다. 탄광 간부들과 보안원, 보위원들도 유승남이 자기 맘대로 석탄을 내다 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지역에서 뽑은 노력영웅인데다 부하들을 잘 다뤄 석탄 생산에 앞장섰기 때문에 모른 척하고 눈감아 줬다.

더구나 ‘노력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웬만한 보안서 간부보다 더 유명인으로 부각되면서 그에게 트집을 잡을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안주 사람들은 지금도 “탄광 당 비서가 자기 공적을 쌓기 위해 ‘빽자루’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당 비서는 유승남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간부들의 반발을 무시하면서까지 그의 생산계획 수행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작업 조건과 후방공급 사업을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었다고 한다.

북한의 일부 영웅들 중에는 이렇게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이중적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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