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대상이었던 임수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 씨를 직접 보기 위해 그가 투숙한 고려호텔 앞에 평양 시민들이 몰려 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민들이 임 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데일리NK 자료사진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자 자격으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을 기억하는 탈북자들은 모두 그를 앳되고 당찬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임 의원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회를 ‘군사독재’ ‘극심하게 통제된 사회’로 인식하고 있었다. 탈북자들은 20대 어린 소녀가 통일을 위해 사선(死線)을 뚫고, 제3국을 통해 방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당시 북한 주민들은 임 의원의 모습에 벅찬 감동을 받았다. ‘통일의 꽃’이라는 말은 당국이 만들어낸 용어가 아니었다.  


임 의원은 방북 기간 중 연설원고 없는 강렬하고 자연스러운 발언을 선보였고, 이는 원고에 의존해 대중연설을 하던 북한 인사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치마 저고리를 입지 않고 티셔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혜산 출신의 한 탈북자는 데일리NK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3국을 통해 목숨을 걸고 북한에 들어온 임수경은 통일을 위해 왔다고 했다”면서 “어찌나 멋지던지 임수경이 탄 차가 지나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장소로 몰려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자가 대중 연설을 하는 경우가 없는데 임수경은 당황하지 않고 당차게 원고도 없이 연설했다”면서 “‘멋있다’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임 의원이 판문점을 넘어 남한으로 돌아갈 때도 북한 주민들은 하나 같이 그의 신변을 걱정했다.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임수경이 남한으로 돌아가면 악랄한 파쇼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영원한 감옥생활을 할 것”이라는 말들이 퍼졌다.


2011년 탈북한 최진한(가명) 씨는 “임수경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가는 모습을 북한 주민들이 TV 실황중계를 통해 지켜봤다”면서 “임수경이 판문점을 넘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까봐 마음을 졸이며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를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았다”면서 “임수경이 총에 맞고 쓰러질까봐 맘 졸였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임 의원은 더 이상 탈북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 1일 탈북 대학생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탈북자 사회의 비난을 샀다. 그는 탈북자들을 향해 변절자라는 말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배가 되고 있다.


탈북자들은 임 의원이 북한을 재방북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탈북자 한용권(가명) 씨는 “차라리 임 의원을 북한에 보내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울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남한에서 죽었거나 징역살이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그가 다시 방북을 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직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임 의원도 이제는 성숙한 자세로 북한을 방문해 현실을 직시했으면 한다”면서 “탈북자들을 만나 북한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방북한다면 도움이 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박경욱(가명) 씨 또한 “임수경을 북한에 보내버리면 북한 주민들은 23년 만에 다시 방북하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랄 것”이라면서 “북한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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