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남북관계 7년 여기까지 왔다

6.15 공동선언이 있던 2000년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는 각 분야에서 질.양적으로 큰 변화를 보였다.

남북 당국간 관계는 2차 핵위기 도래 후 국제정세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민간분야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면서 당국관계도 견인하는 양상을 보였다.

◇’하나’돼가는 남북 = 남북간 경제.문화.종교 분야에서 이뤄진 인적 교류는 2000년을 기점으로 그전 7년에 비해 그후 7년에 24.6배로 뛰었다. 1993-1999년에는 1만711명이던 것이 2000-2006년엔 26만3천491명이 육.해상의 군사분계선을 오갔다.

정부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만남은, 분단 이후 최초로 1985년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의 상봉 후 15년간 긴 공백기를 맞았다가 남북정상회담 후 2000년 8월 1차 상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0여차례 1만6천여명에 이른다.

친척이나 언론매체 등을 통한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은 90년 6건을 시작으로 93년 12건, 97년 61건, 2001년 170건, 2004년 188건, 2006년 54건 이뤄졌다.

98년11월 시작한 금강산 관광의 경우 지금까지 남측 관광객은 150만2천여명. 50만명 돌파에 걸리는 시간이 처음엔 48개월이었지만, 100만명까지는 31개월, 150만명까지는 24개월로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1998년 1만여명을 시작으로 2000년 21만3천여명, 2002년 8만5천여명, 2004년 26만8천명, 2006년 23만4천여명, 2007년 6월현재 11만2천여명 등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간 첫 직항로가 개설돼 편도 기준 2000년 43회, 2001년 19회, 2002년 67회, 2003년 112회, 2004년 28회, 2005년 208회, 2006년 88회 항공기가 오갔고 ’달리고 싶던’ 철마도 반세기만에 지난달 17일 경의선은 문산역-개성역, 동해선은 금강산역-제진역 구간을 각각 오갔다.

바닷길은 1998년 602회, 2001년 1천686회 열렸던 것이 2004년5월 ’남북해운합의서’가 채택되면서 2005년 4천497회, 2006년 8천401회로 왕래가 빈번해졌다.

◇궤도 오른 경협 = 롯데제과가 북측 광명성총회사와 손잡고 과자류를 생산, 판매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등 남.북 기업간 합영.합작이 활성화됐다.

1993-1999년 56건 추진됐던 경제 및 사회문화 협력 사업이 2000-2006년에는 210건으로 3.8배로 늘어났고, 교역도 1993-1999년 17억8천만 달러이던 것이 2000-2006년 52억9천만 달러로 2.9배로 뛰었다.

2000년엔 남측의 536개 업체가 북측과 교역에서 578개 품목을 취급했으나 지난해는 477개 업체가 757개 품목을 거래했다. 거래 업체가 정비되는 대신 품목이 다양해진 것이다.

남북 협력사업에서 정보기술(IT) 분야가 25%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어 농.임.수산업 18%, 관광.레저와 식품 각 10%, 섬유.봉제 8% 순이다.

특히 2000년8월 시작된 개성공단 사업은 남측 업체 24개가 공단에 입주, 북측 근로자 1만5천여명과 남측 600여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남북경협이 본 궤도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아직 시범사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신중론도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특구 외의 지역은 인프라가 절대 부족해 남측 입장에서 불모지나 다름없고 북한도 ‘우선 돈을 벌고 보자’며 남측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북 물류회사 관계자는 “남북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가 2000년 채택됐지만 아직 클레임을 해결할 수단이 없고, 남북 육로가 연결돼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물자 이동을 중국과 동남아 지역보다 비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과 교역할 때와 달리 남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며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이 시장경제 제도를 수용하지 않는 한, 태도가 바뀔 수 있는 모티브가 없는 한 대북 투자의 위험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민간지원 진화 = 공동선언 채택 이듬해인 2001년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단체가 6개에 불과했으나 작년 말 65개로 증가했다.

옥수수, 의류, 분유 등에 머물렀던 지원도 단순 식량지원에서 벗어나 농자재나 기술 지원 등 북한의 자생력을 높여주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2001년 1천만 달러 남짓했던 지원 규모가 2004년 1억3천250만달러를 최고로, 연 평균 7천만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은 북한 내에서 씨감자 생산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국제옥수수재단은 북한 농업과학원과 슈퍼옥수수의 공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 곳곳에 젖소목장을 설치한 굿네이버스는 어린이 성장에 필수적인 우유 증산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고, 의류나 농기계 등을 지원하던 두레마을도 북한의 라선(라진선봉)경제협조회사와 함께 합영농장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이 유사한 내용을 갖고 ’경쟁’하다 북측의 ‘저울질’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권태진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술을 지원하더라도 중복되거나 유사할 경우 남측 단체끼리 무리수를 두며 경쟁하거나, 북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부작용이 남아 있다”며 지원의 체계화 필요성을 지적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공적재원의 절반 이상이 식량난 해소와 인도적 지원에 투입되면서 북한의 생산력 향상을 위한 투자에 소홀했다”며 앞으로 협력사업을 적극 발굴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빈번해진 당국 회담 = 2000년7월 서울에서 1차 장관급 회담이 열린 것을 시작으로 평양, 제주도를 오가며 이달초까지 21회에 걸쳐 회담이 이어졌다.

경제분야 회담은 84-85년 5차례 열린 것이 전부였다가 공동선언 이후인 2000-2007년 75건이 열렸다. 그러나 군사회담은 공동선언이 있은 후 그해 4차례 열렸으나, 오랜 기간 중단되는 바람에 올해까지 모두 7차례만 열렸다.

남북 회담은 1971년 처음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36년간 총 551건중 204건(37%)이 2000년 이후 열렸다.

◇아직 막힌 사람들 = 남으로 들어오는 탈북자가 지난 1월 현재 1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1993년 8명, 1998년 71명이던 것이 2003년 1천281명, 2006년 2천19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6.25전쟁 이후 납북된 3천795명중 2월 현재 480여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재북 국군포로도 56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측에 있는 비전향 장기수의 경우 정부가 1993년 3월 리인모씨를 북으로 보낸 데 이어 6.15 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9월2일 63명이 북으로 송환됐으며, 현재 북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인민군 포로 등 장기수는 3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