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표’ 발행해 놓고 시행 못하는 북한…부작용 염려하는 듯

소식통 "평양 외화상점서도 아직 달러 사용… 돈표 발행 사실 모르는 주민 多"

북한 돈표(2021년 발행). /사진=데일리NK 내부 소식통 제공

북한이 최근 ‘돈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시행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당국이 돈표 발행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과 실효성 등을 검토하며 시행 수준을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돈표는 외화와 교환해 사용하는 일종의 화폐로 북한 당국은 1979년 조선중앙은행을 통해 ‘외화와 바꾼 돈표’를 처음으로 발행했고 80·90년대에는 외화상점 등에서 통용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돈표 발행을 남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외화상점들은 은행에서 돈표를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돈표 가치가 하락하면서 유통량이 줄었고, 결국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때 돈표는 폐지됐다. 

하지만 대북제재와 코로나 사태 이후 북한 외화난이 지속되면서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북한 당국이 또다시 돈표 발행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련 인터넷 매체 프리덤앤라이프는 지난 7일 북한 당국이 최근 돈표를 다시 발행했다고 보도했다. 

본지도 최근 북한 당국이 발행한 돈표의 실물 사진을 입수하고, ‘주체 110년(2021년)’이라는 발행 연도가 인쇄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의 내부 소식통을 통해 복수 확인한 결과 당국의 돈표 발행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에서 옷, 전자제품 등 공산품을 달러로 구매하는 일반 평양 시민들도 대부분 당국의 돈표 발행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평양에서 돈표 발행 사실을 알고 있거나 이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일부 간부급 주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돈표’ 유통이 시작됐다면 돈표 환전에 대한 안내가 있어야 하고 달러를 통용하는 외화 상점에서 달러 사용도 금지돼야 하지만 이와 관련한 조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외국화폐와 교환목적으로 발행했었던 ‘외화와 바꾼돈표’. /사진=연합

23일 데일리NK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락원백화점, 금별상점 등 평양의 외화상점들이 여전히 달러를 취급하고 있다. 

또한 외화상점은 물론이고 평양 시내 어디에서도 돈표 발행을 사실을 공고하고, 이를 발급받기 위한 사용 방법을 안내하는 지시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평안남도 내륙지역이나 평안북도, 양강도 등 국경지역 주민들도 돈표 발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일부 상점에서는 달러나 위안화가 거래에 쓰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돈표를 발행해도 돈표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북한)사람들은 나라가 망해도 달러나 비(위안화)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고 말했다. 

즉,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발행한 내화보다 외화가 안정적인 화폐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90년대 북한 당국이 돈표를 마구 찍어내면서 돈표 가치가 하락했고 돈표를 가지고 있다가 사업이 망하거나 손해본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북한 주민들은 경험을 통해 돈표를 불신하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외화 현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외화대신 돈표 사용을 강제한다면 주민들은 이를 기피하면서 오히려 시중 외화 유통량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돈표 이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유인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과거 돈표 발행의 부작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발행 규모를 제한하는 등 법적 조치도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 소식통은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들 때는 그만큼 절박한 것 아니겠냐”며 “발행은 됐는데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