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자유의 경계인 비무장지대를 가다”

▲임진각 평화의 종 ⓒ데일리NK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는 반세기 전 한국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전쟁은 북한이 무력으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시키기 위해 일으킨 침략전쟁이자 남한 주민들에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상흔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이 비무장지대다.

최근 남과 북이 다양한 교류를 벌이고 있지만 비무장지대는 엄연히 자유 국가인 남한과 수령독재 국가인 북한을 나누는 경계다. 불과 수 킬로미터를 경계로 만성적인 식량부족국가인 북한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남한이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인 필자는 23일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찾았다. 남한쪽 2킬로미터, 북한쪽 2킬로미터, 총 4킬로미터를 경계로 남한과 북한이 공존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생각보다 고요했다.

북한이 지난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필자는 평화로운 비무장지대 건너편 북한 주민들이 이내 떠올랐다. 어제 다녀온 서울 명동, 일본에서는 쇼핑으로 알려진 있는 명동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동시에 오버랩됐다.

이곳에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 이산 가족들, 그리고 북한과의 통일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북한을 볼 수 있는 곳이 비무장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사람들처럼 자유롭게 비무장지대에서 남한을 바라볼 수 없겠지만 서로가 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매 한가지일 것이다.

비무장지대에는 임진강이 흐른다. 임진강은 통일을 상징한다.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을 나누지만 임진강은 지금도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바라는 남북한 주민들의 염원이 임진강처럼 계속해서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임진강은 통일대교를 거쳐 비무장지대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통일대교는 남북 교류에 있어서 상징적인 곳이다. 1998년에 현대 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통일교를 통해1000여 마리의 소와 함께 방북하면서 대북사업의 물꼬를 텄다.

이후 수많은 남한의 지원물자가 통일교를 북으로 들어갔다. 2007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일교를 건너 북한에 방북, 김정일 국방의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필자가 비무장 지대를 방문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5일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이 남북 화해에 기여하고자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소떼를 몰고 방북 하는 등 수많은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지난친 것일까? 이처럼 북한 문제는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렇게 통일교를 멀리하고 잠깐 가더니 넓은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 공단 사업이 시작되면서 건설된 남북 출입사무소 톨게이트다.

출입사무소 옆에는 유리벽으로 만든 도라산역이 보였다. 도라산역에서 언젠가는 평양행 전철을 타는 날이 올 것이다. 2007년 남북열차시험운행이 있었는데, 시험운행이 아닌 남북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올 것이다.

역에서 가까운 언덕에 도라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개성시에 있는 김일성 동상도 보인다고 하지만 이날은 공교롭게도 안개가 자욱했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상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개성의 김일성상이 여기서 보인다는 사실에서 개성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언덕 기슭에는 아카시아 꽃으로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언덕에서 몰려오는 아카시아 꽃향기는 혼자 맡기 아까울 정도로 향기로웠다.

전망대에 이어 임진강 강변에 있는 임진각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한국 전쟁 후 포로가 건너서 귀환했다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적어 놓은 헝겊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에 하염없이 나부끼는 헝겊을 보니,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일본 사람인 필자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3자다. 아니 3자였다. 북한 문제, 특히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3자라는 것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은 북한 사람들처럼 고통을 받지 않은 곳에 살고있다는 점 때문일까. 몇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필자는 북한문제에 있어서 3자가 아닌 북한 인민들의 아픔과 함께하고 싶다. 북한인권 실현의 소망을 담은 마음의 편지를 자유의 다리 한쪽켠에다 매달아 놓았다.

보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겠지만 내가 이곳에 방문하게 된것도 그런 바람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해방되고 남북철도가 운행되는 날 필자는 이곳에 달아 놓은 통일염원의 마음의 쪽지를 찾으러 올 것이다.

▲도라산역 ⓒ데일리NK

▲도라산역 구내 출입사무소 ⓒ데일리NK

▲도라산역 개찰구 ⓒ데일리NK

▲제3 땅굴의 통일을 바라는 모뉴먼트 ⓒ데일리NK

▲도라산 전망대. 노란 선을 넘은 곳에서는 촬영 금지 ⓒ데일리NK

▲자유의 다리 ⓒ데일리NK

▲자유의 다리에 내걸려 있는 깃발과 헝겊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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