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길을 연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과거 동서독의 분단극복에 기여한 여러 인물들 중에 통일 당시 외무부장관을 지낸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그는 습관상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으면 곧 잠이 들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잠을 깬다고 해서 천상 외무장관 감이라는 별명의 소유자다.


그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깔끔한 외교관이 아니다. 양복이 무슨 색이건 아내가 손수 짜 생일선물로 주었다는 노란조끼를 늘 입고 전 세계를 누비던 동네 아저씨가 그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가 긴 코와 오버랩 되어 그는 코끼리 아저씨로 통한다. 이 평범한 아저씨가 74년부터 92년까지 무려 18년간 독일 외교의 수장을 맡았던 최장수 외무장관이었다. 외교관으로서 그의 최대 업적은 89년 9월 헝가리로 하여금 대(對)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토록 한데 있다. 그 후 필자는 이를 20세기 최대의 외교전쟁의 승리라고 부른다.


89년 여름, 영원히 평화 공존할 것 같았던 독일 땅은 조직적인 동독탈출이 시작되며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8월 8일 동독인 131명이 동베를린 소재 서독 대표부에 진입한데 이어, 8월 19일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개최됐던 한 평화축제장에서 600여명의 동독참가들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헝가리 정부가 민주단체와 범유럽 동맹이 주최한 이 행사를 위해 국경을 서너 시간 개방한 틈을 탄 탈출극이었으며, 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발생한 최초의 조직적인 탈출이었다.


이 사건은 동독과 서독정부의 한판 외교전을 불러 일으켰다. 헝가리 정부의 오스트리아 국경개방을 둘러싼 동서독 정부의 전면전이었다. 동독은 사회주의 형제국임을 내세워 헝가리 정부의 국경개방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한다면 외교단절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동맹관계가 깨질 것을 경고했다.


서독정부는 자유와 풍요를 찾아 고향도 등진 동족을 돕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임과 동시에 의무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헝가리 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영원히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 외교전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도덕적으로 월등한 서독의 승리로 끝났고 헝가리가 국경개방을 결정한 순간부터 2달간 무려 2만4천 여명의 동독인들이 자유세계의 품에 안겼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베를린 장벽은 철거되었고 통일의 길일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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