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는 누구인가?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동독주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헬무트 콜 서독 총리 등이 거론된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독일통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불가피하게 독일통일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최고 공로자’로 평가 받기에는 부족하다. 그 반면, 콜 서독 총리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통일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➀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동유럽의 개혁·개방 추세를 선도했고, ➁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혁명과 탈공산화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근거가 되었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포기함으로써 동유럽의 탈공산화 혁명을 가능하게 했고, ➂동독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촉구함으로써 동독주민의 시위를 확산시켰고, ➃동독 공산정권에게 소련군의 동독시위 불개입 방침과 시위의 무력진압 반대 의사를 전달함으로써 동독주민의 평화·무혈 혁명을 가능케 했으며, ➄독일통일의 열쇠를 갖고 있던 2차 대전 전승 4대국의 일원으로 독일통일을 승인했다는 점 등에서 독일통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소련과 동구권의 변화를 가져온 “역동성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의식 없이 동유럽을 해방시킨 ‘역사무대의 수동적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독일통일의 수락과정에서도 끝까지 버티다가 국내외 정세변화와 서방측의 압력으로 부득이 독일통일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동독 주민


동독주민은 촛불혁명으로 동독 공산정권을 붕괴시키고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동독을 버리고 통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독일통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과 동독 포기가 없었다면 평화혁명에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자유선거에서 신속한 통일을 약속한 독일연맹」을 지지한 것도 풍요한 서독사회에의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최고 공로자’로 평가받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신동방정책의 추진, 동서독기본조약의 체결 등 일련의 화해·협력 정책을 통해 동서독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류협력을 증진하여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의 완화와 민족의 이질화 방지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신동방정책은 ➀동독 공산체제가 개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오류가 있었고, ➁통일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분단의 평화적 관리’에 목표를 둔 정책이며, ➂정책 목표를 “접근을 통한 변화”에 두었으나 독일통일은 동독이 ‘변해서’가 아니라 동독 공산정권이 ‘망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➃그의 노선을 계승한 서독 사민당(SPD)이 동독 평화혁명 이후에도 통일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로 평가받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동독 시위 초기부터 독일통일 가능성을 예견하고 콜 정부의 통일정책을 적극 지원했고, 소련과 영국이 독일통일을 승인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독일통일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역할이 독일통일의 대외적 측면에 국한되어 있어 고르바초프나 콜에 비해 영향력의 범위가 좁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


콜 총리는 동독주민들의 시위 초기부터 동독주민의 시위가 독일통일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독일통일 여건을 조성해 나갔다는 점에서 특히 그 공로가 돋보인다.


콜 총리는 베를린 장벽 개방 3주 후인 1989년 11월 28일 독일과 유럽분단 극복을 위한 10개항 계획」을 발표하여 베를린장벽 붕괴를 통일로 연결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수많은 비판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정책대응으로 독일통일을 가능케 했다.


더욱이 2차 대전 종전 이후 통일에 대한 논의가 금기시되던 서독에서 통일 가능성이 거의 예견되지 않던 시기에 명확한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통일작업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콜 총리는 좁게 열려진 통일의 기회를 잘 이용했을 뿐 아니라 과감한 추진력으로 통일의 기회를 넓혔다. 따라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독일통일의 ‘최고 공로자’로 불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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