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남북통일 여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②

➄분단의 수준이 다르다.


독일의 경우 분단 당시부터 동서독이 단일 경제권으로 취급되어 경제교류가 지속되어 왔고, 1970년대 이후에는 상호 TV와 방송청취가 가능했으며,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는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지속되어 왔다. 남북한의 경우 상호 불신과 적대감이 높은 데다 지난 20여 년간 추진되어 온 인적·물적 교류도 북한의 폐쇄적 태도 때문에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체제통합을 위해서는 독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➅동독주민은 민주주의 경험이 있었다.


동독 주민들은 공산 독재체제 하에 있었으나 북한에 비해 민주제도에 대한 경험과 시민의식이 훨씬 높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국가들이 갖고 있던 자유주의의 정신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고, 1919년부터 1933년 기간 동안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진적 민주제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 중반 이후 동유럽권에 대한 소련의 통제가 완화되고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인접 공산국가에서 민권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동독에서도 곧바로 시민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 반면, 북한 주민은 민주주의의 경험과 민권의식이 전혀 없고, 철저한 세뇌교육과 주민통제로 민주화 열망이 낮은 편이다. 흔히 얘기하는대로 북한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할 수도 없는 것”이다.


➆ 동독주민은 서독 방송과 텔레비전의 수신이 가능했다.


동독은 1960년대까지는 서독 방송과 텔레비전 시청을 금지했으나 1970년대부터 서독 텔레비전 시청을 허용했기 때문에 서독 텔레비전이 독일통일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 여행과 동유럽 국가 방문을 통해 외부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국방송 청취가 금지되어 있고 외국여행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어 외부정보를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➇ 동독과 북한은 주민통제 수준이 매우 다르다.


동독의 경우 국가보안부(Stasi)를 중심으로 강력한 주민통제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은 외부와의 교류채널이 많고 교회가 보호막의 역할을 한데다 반체제 활동에 대한 벌칙이 가혹하지 않아 1989년 후반기 이후 평화혁명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북한은 주민감시 체제가 매우 견고한 데다 소위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특별수용소 수용, 강제노동, 공개처형 등의 잔혹한 형벌을 가하고 있어 반체제 세력이 생성되거나 확산되기가 매우 어렵다.


➈ 동독과 북한은 집권층의 체제수호 의지가 다르다.


동독은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군사적 보호 하에 있는 데다 1953년 동베를린 노동자 시위가 소련탱크에 의해 무참히 진압된 이후 심각한 체제위기를 겪지 않고 지내왔다. 따라서 1989년 10월 시위가 발생했을 때 장기 집권한 호네커 서기장의 제거 및 여행자유 확대 등의 조치로 사태수습이 가능할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더욱이 주민시위로 체제붕괴 위기에 직면한 후에도 유혈진압 등 목숨을 걸고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세력이 없어 주민의 평화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6·25전쟁, 대남도발 및 주민탄압의 죄과를 가진 세력들과 만경대 학원 출신자 등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많고, 주민들이 공산주의 선전에 세뇌되어 있어 북한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데는 훨씬 오랫동안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⑩ 동독에는 종주국이 있었으나 북한에는 소련 같은 종주국이 없다.


동독에는 소련이라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종주국이 있었으나 북한은 이런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없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동독은 평소 대내외 안보를 소련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자력안보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1989년 가을 소련의 보호막이 걷히자 쉽게 체제붕괴 위기를 겪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 오랫동안 독자적 안보체제를 갖추고 있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따라서 동독과 같이 외부환경의 변화로 갑자기 안보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적다.


⑪ 동독에서는 대규모 시위나 탈출이 가능했다.


동독에서는 서독 텔레비전이 정보 유통과 시위 확산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데다 교통·통신 여건이 좋고 주민들의 동유럽여행이 자유로워 대규모 시위나 국외 탈출이 용이했다. 더욱이 잠재적 반체제 세력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은신하고 있어 반체제 단체의 급속한 확산이 가능했다. 그 반면, 북한은 주민 상호간의 정보공유 수단이 없고 교통·통신 사정이 열악한 데다 엄격한 주민통제로 반체제 세력의 형성은 물론 대규모 시위나 탈출사태가 일어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동독에서와 같은 ‘평화혁명’이나 ‘발로 이룬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은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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