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의 ‘평양주민은 노예, 개’ 칼럼은 잘못되었다

▲ 맥없는 평양주민들이 지하철에 앉아있다(출처: 中 인민일보)

10일자 인터넷 독립신문에 ‘평양주민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이들은 단지 김정일의 노예, 개에 불과하다’는, 평양주민을 매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칼럼이 실렸다.

며칠을 고민하다 북한출신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나는 2000년 평양을 떠나온 탈북자다. 그래서 평양에 대해 알고 있다.

칼럼이 주장하는 요지는 “김정일의 독재와 군사모험주의의 배경에는 북한주민의 묵인과 동조가 있다. 특히 평양주민의 노예근성이 김정일의 파괴적 독재 권력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평양주민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이 칼럼은 북한사회와 김정일 정권의 실상에 대해 뭘 모르고 쓴 글이다. 평양주민을 ‘노예, 개’로 평가하기에 앞서 김정일의 독재가 어떤 체제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가부터 깊이 생각해본 뒤 글을 썼어야 했다.

오늘날 북한문제는 북한 내부의 요인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칼럼의 지적은 옳다. 예를 들어 북한내부에 강력한 반(反)김정일 세력에 의한 쿠데타나 반체제 운동과 같은 것이 북한문제 해결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김정일 정권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나

그러나 현 시점에서 반체제 운동과 같은 것이 조직되고 반체제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연대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특히 평양에서는 국경지역보다 훨씬 더 어렵다. 왜 그런가.

칼럼을 쓴 필자는 2003년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평양에서 온 미녀 응원단이 김정일의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고 울면서 이를 걷어서 가슴에 안고 차를 탄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남한사람들은 이같은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은 그렇게 한다.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1967년 노동당 제2차 대표자대회 이후 공산권 중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독재체제 즉 유일사상체계가 수립되었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이후에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의 10대 원칙’이라는 것이 나와 평생동안 10대원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10대 원칙 중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의 초상화나 사진을 무조건, 절대적으로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녀 응원단은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노예나 개로 본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사고체계가 형성되게 되어 있다. 태어나자마자 늑대의 무리속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소녀가 늑대처럼 행동했고, 나중에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은 남한의 책에도 나와 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불교인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듯이,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사상으로 무장하도록 철저히 교육되어 있다. 잘못된 것은 바로 김일성-김정일 사상으로 무장하도록 한 체제인 것이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북한주민이 자유로운 사고를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면 북한주민인들 왜 김정일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겠는가? 일제때 신의주 학생운동, 기독교 운동은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강력했다. 북한주민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교육받으며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사회체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

만약 칼럼의 필자가 평양에서 태어나고 평양에서 교육받고 지금 평양에 살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필자 역시 틀림없이 김정일의 노예나 개가 되어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자유를 누릴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북한은 8.15 광복 후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반(半)봉건 농업사회에서 바로 계급주의적 사회주의 단계로 넘어갔고 불과 20년 만에 수령절대주의 사회로 넘어갔다. 일제 때 교육을 받은 연로한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해방후 태어난 사람들중에 외국물을 먹은 사람을 빼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지금 평양주민들은 남한이 잘 산다는 것은 알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지를 도무지 모른다. 이것이 현실이다.

과거 구소련 사회, 동구권 사회는 지금의 김정일 독재에 비하면 훨씬 민주주의적이었다. 스탈린 정권 때도 지금 북한보다 나았을 것이란 점은 북한을 잘 아는 구소련 출신들이 말하고 있다.

또 그나마 “자본주의는 자유가 많다”고 말 한마디 했던 북송 재일교포나 러시아 벌목공들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주민들은 오로지 당국이 가르치는 대로 “자본주의가 들어오면 우리는 노예가 된다”는 사상에 젖어 있는 것이다.

또, 당, 근로단체, 인민반 등 각종 감시조직이 거미줄처럼 덮여있다. 주민 5명당 한 사람이 독재기관의 스파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반체제 활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당국이 혁명의 수도로 선전하는 평양에서…

시위는 더욱 생각지도 못한다. 남한에서는 데모하다 연행되면 며칠 감옥에 갔다 오면 그만이지만, 북한에서는 본인의 처형은 물론 온 가족까지 철저하게 매장 당한다. 이것이 연좌제다. 과거 봉건시대 3족을 엮는 것과 유사하다.

남한처럼 집회, 시위의 자유가 있다면 왜 벌써 북한체제가 변하지 않았겠는가,

북한사회 더 알고 글 써야

칼럼은 또한 “북한의 경제적 피폐에도 불구하고, 평양주민들은 비교적 안정적 배급을 받는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평양주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김정일의 수혜자(受惠者)인 것은 아니다.

중앙당, 정권기관(내각), 군 장성들과 보위부, 보안성 간부 등 핵심들을 제외하고 일반 주민들은 지방 주민들 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외국을 들락거리는 외교관들과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달러나 엔화를 가지고 외화상점을 출입하지만, 일반주민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식량난이 절정에 달했던 96~97년 사이 평양도 배급이 끊겨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쌀 구걸 떠나고, 신의주와 혜산 등 국경지대로 대거 몰려들었던 적이 있었다.

본 평양역전과 서평양 역전 앞 공원에는 넥타이를 맨 할아버지들이 도시락을 먹는 군인들 앞에 주름진 손을 내밀며 “밥 한 덩이만을 달라”고 빌던 때도 바로 이 시기다.

대부분의 평양주민들도 죽으로 끼니를 이었다. 굶어 쓰러지면서도 오로지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민들을 철저히 속인 당국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조선중앙방송 채널 하나만 보고 노동신문만 본다고 생각해보라. 머리 속에 무엇이 다른 생각이 나오겠는가.

칼럼은 또한 “평양주민은 …아리랑 축제나 기타 북한군사독재정권의 기념일마다 열리는 군중대회 및 마스게임 등에 대규모로 동원된다”고 지적하고, “김정일의 은혜를 받은 만큼 충성해야 하는 것이 평양주민”이라고 서술했다.

평양주민들이 ‘아리랑’ 공연과 대형 매스게임에 가는 것은 필자도 말했듯이 자유롭게 가는 것이 아니라 ‘동원되는’ 것이다. 이 메스게임에 아이들은 바지에 피오줌을 싸며 훈련에 동원된다. 하루 이틀 빠져도 비판은 물론 가족까지 지방에 추방된다. 훈련에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부모들은 훈련장에 보낸다.

약 180만 인구가 사는 평양주민들도 독재의 사슬에 묶인 2,300만 주민의 일부분이다. 이들은 앞으로 김정일 정권을 뒤엎고 평양에 민주주의를 세워야 할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을 이야기하고 남한에서도 북한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단체들이 있지 않는가. 이들은 지금은 어렵기 때문에 북한주민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외부에서 인권과 자유의 사상을 밀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평양주민들에게 자유를 빨리 쟁취하라고 독려하는 것이라면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의 어디를 봐도 평양주민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애정을 갖고 말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북한주민에 대한 경멸만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칼럼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북한사회에 너무 무지하다.

김원혁(평양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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