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남북공조 디딤돌 놓은 재야사학자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통일이 되면 무엇하나. 독도는 한민족이 함께 지켜야 한다.”

서지학자이자 독도 지킴이로 평생을 살았던 고(故) 사운(史芸) 이종학(1928-2002) 사운연구소장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다.

그가 생전 열정을 쏟았던 남북 학술교류 사업이 최근 일본의 독도 편입 움직임에 남북이 한 목소리로 대응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북한 역사학학회 허종호 위원장은 4일 조선중앙통신과 인터뷰에서 “독도를 맨 처음 발견하고 대대로 개척ㆍ경영한 나라는 조선이며 그것을 국토에 편입하고 그 영유를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조선”이라며 이를 입증하는 사료를 일일이 언급했다.

허 위원장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서와 함께 1900년 독도 관리를 공표한 고종황제의 칙령 41호, 독도가 “본방(일본)과 관계 없는 것으로 알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1877년 일본 태정관 지령문, 1785년 지리학자가 작성한 조선8도지도,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만든 군사작전지도 등을 꼽았다.

북한이 이렇듯 독도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었던 데는 사운 선생의 숨은 공로가 컸다.

그가 맡고 있는 사운연구소가 2001년 3월 1일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일제 조선강점의 비법성에 대한 북남공동 자료전시회’를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와 함께 주최할 때 자신이 수집한 관련 자료를 갖고 갔다.

당시 초대 독도박물관장도 맡고 있었던 사운 선생은 박물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제 나는 공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 방북했다. 박물관측은 “북한의 공식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한 첫 남한 역사학자”라고 말했다.

그는 자료전시회가 끝난 뒤 “북한 학계가 일본과 국교정상화ㆍ식민지 배상요구 등 정책을 수립하는 데 적극 활용하라”며 1천430점의 자료를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 기증했다.

기증 자료 중에는 독도 관련 사료는 물론 그가 직접 발굴한 일제강점기 사료와 한ㆍ일 사학계의 연구성과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북한에서는 6.25전쟁으로 인한 자료 손실이 심했고 일본과 학술 교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운 선생이 기증한 자료가 일제강점기 연구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운 선생은 독도 문제, 일제 강점ㆍ수탈사에 대한 수많은 기초자료를 수집ㆍ공개해 근대사 복원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후 2만점에 가까운 자료가 수원시에 기증됐다.

독도박물관의 박상규 학예연구사는 6일 “사운 선생은 남북 역사학계의 교류 물꼬를 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면서 선생이 남긴 방대한 자료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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