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NK 선정 2009년 남북관계 10대뉴스

2009년 한 해 남북관계는 어느 해 보다 변화무쌍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에는 우리 정부와의 교류·협력을 일관된 태도로 거부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를 맞아 조문단을 파견하는 등 남북관계 전환을 위한 평화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동시에 핵실험, 미사일 발사, 서해 도발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도 1년 내내 계속됐다. 또한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 억류, 임진강 방류 사태 등의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들의 대북인식도 부정적으로 기울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산가족사업의 재개, 신종플루 치료제 지원 등 인도적 현안에 대해서는 일부분 교류의 물꼬가 터지고 남북간 대화 재개를 위한 당국 차원의 물밑 접촉도 진행됐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와 연계한다는 전제 하에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은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건과 우리 국민에 대한 북한의 신변보장이 제도화 될 경우 정부는 본격적인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데일리NK는 송년을 맞아 남북관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① 개성공단 계약 무효 선언


북한은 5월 15일 개성공단의 기존 법규와 계약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6월 11일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현재의 약 4배인 월 300달러로, 토지 임대료를 이미 납부한 금액의 31배 수준인 5억 달러로 각각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가 3월 30일 북한 여성에 대한 탈북 책동 혐의로 체포, 억류되면서 개성공단 사업 지속 여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북한은 하반기 들어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을 예년 수준인 5%로 유지하자고 제안하는 등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2월 중순에는 남북 대표단이 공동으로 중국, 베트남 공단시찰을 진행했다.


② 북한 조문단 방남


북한의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으로 구성된 조문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8월 21부터 사흘간 서울을 방문했다.


북한 조문단은 이명박 대통령,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을 만나 ‘남북관계 진전을 희망한다’는 김정일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한 조문단의 서울 체류 일정은 당초 1박 2일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하기 위해 일정을 하루 연장하는 등 대남 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③ 디도스 사이버 테러


7월 7일 청와대를 비롯한 한미 주요 정보 사이트와 대형 사이트가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받아 접속장애를 겪는 초유의 인터넷 대란이 발생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 조평통의 사이버스톰 비난 성명서 발표 ▲공격대상이 보수단체라는 점 ▲특정해커가 쓰는 수법을 사용한 점을 미뤄 볼 때 북한 또는 추종세력이 이번 사이버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국정원은 또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 산하 110호 연구소를 ‘디도스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④ 현정은 회장 방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재개와 억류된 근로자 유 씨의 석방 문제 등 대북사업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8월 10일 평양을 방문했다.


당초 2박3일의 방북 일정이었지만 김정일과의 면담 성사를 통해 5차례나 체류를 연장했다.


현 회장은 김정일과의 면담을 통해 ▲추석 이산가족 상봉 ▲남북간 육로통행 원상회복 ▲빠른 시일 내 금강산 관광재개 ▲개성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실시 등 5개 분야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민간차원의 합의이기 때문에 남북 당국간 구체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지만, 추석 이산가족 상봉은 합의대로 이뤄졌다.


⑤ 임진강 방류 사태


북한이 9월 6일 새벽 임진강 황감댐을 무단방류해 야영 중이던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북측은 참사 다음날 통지문을 통해 “임진강 상류 북측 언제(댐)의 수위가 높아져 5일 밤부터 6일 새벽 사이에 긴급히 방류하게 됐다”고 경위를 밝혔지만, 사과 및 재발방지에 대한 의사 표명은 없었다.


 이후 북한은 10월 14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에서 ‘임진강 사고’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명했다. 남북은 이날 회담에서 임진강을 비롯한 남북공유하천에서의 피해예방과 공동이용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 협의를 앞으로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⑥ 북핵 일괄타결 ‘그랜드바겐’ 제안


이명박 대통령은 9월 23일 뉴욕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핵 해법인 ‘그랜드 바겐’ 구상을 국제사회에 공식 발표했다.


‘그랜드 바겐’ 구상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면 동시에 국제사회가 북한에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하겠다는 일괄타결 방식이다.


‘그랜드 바겐’은 그동안의 ‘단계적 접근’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나온 발상으로 ‘포괄적 패키지’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그랜드 바겐’에 대한 공감 의사를 밝히며, 6자회담 추진 과정에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그랜드 바겐’ 제안에 대해 “허황된 꿈” “백해무익” 등으로 표현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⑦ 2년 만에 재개된 남북이산가족상봉


현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1, 2차로 나눠 이뤄졌다.


1차 행사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 97가족이 재북 가족(233명)을 만났고, 2차 행사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99명이 재남 가족(431명)을 만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지난해 착공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이번 상봉에서는 국군포로 한 가족과 납북자 두 가족도 ‘특수 이산가족’이란 이름으로 만남을 가졌다.


정부는 이후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추가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제안했지만 북측의 호응이 없는 상태다.


⑧ ‘긴박했던 2분’ 3차 서해교전(대청해전)


남북한 해군은 지난 2002년 2차 연평해전에 이후 7년 만에 서해상에서 교전을 벌였다. 남북 해군 함정은 10일 오전 10시 27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교전했으나 우리 측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측은 함정이 반파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우리 함정은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여러 차례 경고통신을 무시하고 NLL을 침범해 계속 남하하자 교전규칙에 따라 경고사격을 가했다.


이에 북한 경비정은 남측 고속정을 향해 ‘직접사격’을 가했고, 우리측 고속정은 교전규칙에 의해 ‘대응사격’을 가해 북측 경비정을 퇴각시켰다. 그러나 북측은 이번 교전의 책임이 남측에 있다고 비난하며, 보복성 공격을 가하겠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⑨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 지원


우리 정부는 12월 18일 개성에서 신종플루 치료제 50만 명분을 북한 측에 전달했다. 이번 지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직접 인도적 지원 물자를 북한에 제공한 첫 사례다.


이번에 북측에 전달된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 물자는 타미플루 40만명분과 리렌자 10만명분으로, 10억원 상당의 손세정제는 정부가 물량을 확보하는 데로 내달 중하순께 북한에 전달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신종플루 관련 대북지원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178억원 사용을 의결했으며, ‘분배 결과 보고서’를 통해 사후 분배 현황을 파악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별개로 개성공단에도 북한 근로자용 신종플루 치료제 1천명분과 공단 내 북측 의료진용 신종플루 백신, 열감지 카메라 등을 제공했다.


⑩ 3차 정상회담 개최 위한 남북간 물밑접촉


북한은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일행을 특사조문단 자격으로 파견한 것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타진해왔다.


이에 따라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지난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김 통전부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논의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후 11월 7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개성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북측과 협상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는데, 북측은 정상회담 장소를 북한 지역으로 하며,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와 남측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남측은 김정일 서울 답방 원칙을 양보하는 대신 일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북은 정상회담 이후 남측을 방문할 국군포로와 납북자 수와 그에 대한 경제적 대가 등에 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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