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NK 선정 2005년 북한 10대 뉴스

2005년은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이슈로 부각되었고,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해 핵실험 임박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12월에는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유통문제가 급부상했다.

지난해 탈북자 집단입국 이후 중단됐던 남북관계가 재개되면서 대북 전력지원문제, 인도지원식량의 분배투명성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북한이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규정하고 배급제 재개를 선언하는 등 북한 내부에서도 화제거리가 많았다.

데일리NK는 2005년을 정리하며 북한관련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 북한인권, 국제 이슈로 부각

2005년은 북한의 인권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한 해다. 가장 큰 성과는 UN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사상 최초로 채택된 것이다. 4월에 열린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3년 연속 채택됐고, 비팃 문탓폰(Vitit Muntarbhorn) 특별보고관의 임기가 1년 더 연장됐다.

데일리NK가 새해 벽두에 공개한 ‘反체제 동영상’은 공포와 탄압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강렬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했다. 이어 공개된 ‘공개처형 동영상’은 북한 인권유린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유엔인권위에 채택되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 N-TV를 통해 방영된 이 동영상은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북한의 현실을 전했고, 세계 최대 뉴스채널인 CNN에서도 방영됐다.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각종 보고서도 북한의 인권실태를 증명했다. 북한을 ‘특별관심대상국(CPC)’으로 지정한 국제종교자유위원회(CIRF)는 2005년에도 종교자유 침해국가로 남아있다고 발표했으며,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도 ‘세계의 자유’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을 최악의 ‘비자유국’으로 35년 연속 분류했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2월에 <북한인권시민연합> 주최로 ‘제6회 북한인권ㆍ난민문제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7월에는 <프리덤하우스> 주최로 워싱턴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렸고, 12월에는 전 세계 북한인권운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미국은 지난 해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변호사 출신의 제이 레프코위츠(Jay Lefcowitz)를 북한인권특사로 임명했다. 일본도 최근 사이카 후미코(齊賀富美子) 노르웨이 주재 대사를 인권대사로 임명 서울의 국제대회에도 참석하게 했다. 국내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북한인권법’ 제정이 추진되었다.

북한인권운동가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탈북자 구출운동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 제프리 박(한국명 박준재) 목사가 탈북자 일행과 메콩강을 건너던 중 일행을 살리고 자신은 희생되었다. 6월에는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에 헌신해온 남재중 박사가 타계했다.

2. 북한 핵보유 선언과 6자회담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은 핵보유 및 핵무기 양산을 전격 선언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4차회담에서 9.19 베이징 공동성명을 채택,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 포기 △빠른 시일 내 NPT(핵무기비확산조약)복귀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부재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에 의한 불침공 확인 등에 합의했다.

이후 5차 1단계 회담에서 북한이 先 경수로 제공을 제기하면서 난항을 빚었다. 속개된 5차 2단계 회담은 북한이 금융제제를 해제를 새롭게 들고 나와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다.

3. 한국정부, 대북전력지원 계획 발표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은 7월, 200만kW의 대규모 전력지원을 포함한 ‘대북 중대제안’을 발표했다.

남한의 전력지원 제안은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 포함되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으로부터 ‘창의적 제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북한은 “대북 직접 전력지원이 원자력 발전을 배제한 차원의 보상이라면 관심 없다”고 반응했다. 대북 전력지원은 북한이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폐기할 경우 정부가 지원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또 북한에 대한 대규모 전력지원은 소요되는 예산만 수 조원이어서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대북 전력지원 소요 예산은 6자회담 이행합의서 체결, 북한 전력사정 사전 조사, 사용 내역에 대한 국회보고 등의 조건을 달고 있다.

4. 조선노동당 창건 60돌

북한은 10월 10일 당창건 60돌을 기념, 대내외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체제단속에 주력하고 배급제 재개를 선언했다.

또 당창건 60돌 공동구호를 발표하고 ‘100일 전투’(7.3∼10.10)를 전개했으며, 중앙보고대회, 열병식, 가두행진과 야회, 횃불 행진 등을 개최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아리랑’ 공연을 8천 명에 가까운 남한 관광객이 관람해 화제가 됐다.

한편 북한은 배급제를 재개를 선포하면서 장마당에서의 식량 판매를 금지시켰으나, 실제 배급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또 세계식량계획(WFP)이 식량지원과 모니터링 활동을 종결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12개 국제구호단체에 대해 연말까지 철수할 것을 통보했다. 이는 남한과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이 확보되면서, 모니터링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국제기구의 식량지원을 받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또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내부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로 분석되었다.

5. 북한 위조달러 문제 급부상

미 국무부는 12월 16일(현지시각) 40개국의 외교관과 위폐관련 전문가를 초청,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유통 문제와 관련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북한의 위조달러에 대한 각종 증거들이 제시됐다. 외국은행에 위폐를 입금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지폐 제조에 쓰이는 특수종이와 잉크, 인쇄장비 등이 자료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정교하게 위조된 위조달러 ‘슈퍼노트(Super Note)’를 제조, 유통해왔다는 의심을 받아왔으며, 북한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한 북한인들이 위폐를 환전하거나 운반하다 수 차례 적발된 바 있다.

미국은 10여년 전부터 재무부 위폐 전문조사국(SS)에서 북한의 위조달러를 추적해오는 한편, 2002년 경부터 국무부 내에 ‘북한실무그룹(North Korea working group)’을 구성, 북한의 각종 국제범죄행위를 조사해왔다.

6. 현대 – 북한 갈등

8월 말,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을 놓고 북한이 “신의 없는 행동”이라며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객 수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현대-북한 간 갈등이 폭발했다. 북한은 현정은 회장의 방북시 핸드백까지 열어 검색하고, 연설 도중 자리를 뜨는 방식 등 모욕을 주었다.

10월 20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현대와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북사업권의 현대 독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현대- 북한간 사태는 김 전 부회장에 대한 내부 감사를 주도한 최용묵 현대 경영전략팀 사장이 사퇴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현정은 회장은 11월 11일 개성에서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을 정상적으로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7. 맥아더동상 철거공방과 남남갈등 증폭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인터넷 매체에 “6.25전쟁은 북한이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표현, 파문이 일었다.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유례없이 지휘권을 발동,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장시기 동국대 교수는 ‘민교협’ 홈페이지에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 “김정일이 노벨 평화상을 타지 못한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 또 한번 논란을 빚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를 놓고 좌-우 갈등을 빚었다.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친북단체와 이를 사수하려는 보수단체들간의 격렬한 공방이 전개됐다. 친북단체들이 죽봉을 휘둘러 경찰이 실명 위기에 빠지는 등 물의를 빚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8.15 민족 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했다. 북측은 12월 장관급 회담에서 이른바 ‘3대 장벽’ 문제를 제기하며 북측이 현충원에 참배한 만큼, 방북단이 북측 어느 지역을 방문하든 제한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이는 김일성 시신 참배 허용을 요구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북한인권문제를 둘러싼 남한내 공방이 계속되었다. 국가인권위는 올해에도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으며, ‘연내 입장발표’ 약속도 무산시켰다.

8. 北주민 고통 지속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이 활발했으나 북한주민은 생활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올해 초 개인 경작지 수확물에 대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당국은 추수를 맞아 ‘국영농장 수확물’로 전환, 북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쌀 1kg에 800~900원으로 물가는 한해 동안 큰 변동이 없었으나 하반기 들어 장마당에서 곡류판매를 금지하는 바람에 식량구입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전기세, 물세(수도세) 등 각종 세금 종류가 늘었고 세액도 늘었다. 교육비, 의료시설 이용비가 늘었으며 일반주민들에 대한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이미 의미가 상실되었다.

마약중독자가 늘어나 평양, 신의주 등지에 마약 단속반이 파견되었으며, 연초에는 ‘비사 그루빠’(非사회주의 현상을 단속하는 부서)가 국경지역에 파견돼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추방되었다.

9. 연형묵 사망과 北정권 활력 쇠퇴

‘김정일의 오른팔’로 불리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연형묵이 10월 22일 사망했다. 연형묵은 오랫동안 북한 국방산업시설이 밀집된 자강도 당 책임비서를 맡아왔으나, 6월 <노동신문>이 자강도당 책임비서를 ‘박도춘’으로 호명함으로써 그의 신상 변동이 감지되었다.

연형묵은 심장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연형묵 등 김정일 측근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최근 김정일 정권의 내부활력이 상실되었다. 2004년 김정일의 애첩 고영희 사망과 실질적 2인자 장성택 숙청, 대남사업을 총괄한 김용순의 사망(2003년),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웠던 보위사령관 원응희 역시 2004년에 사망했다.

김정일의 최측근들이 사망하고 새로운 간부의 영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북한정권도 크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북한 국방위원회의 위원들 가운데 나이가 확인된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73.3세이다.

10. ‘김정일 후계’ 안개 속 논란

김정일의 후계자에 대한 국내외 논란이 증폭됐다.

일본의 시사 주간지 ‘아에라’와 러시아 주간지 ‘블라스티(권력)’는 2월 김정일의 후계자로 차남 김정철이 유력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김정철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10월 방북시 만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슈피겔’ 보도 후 김정일은 후계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체 중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세습독재’의 비난을 막고, 자신의 권력에 누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되었다.

데일리NK 10대뉴스 선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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