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간의 관계의 동학이 더욱 복잡해졌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및 촉진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녹록지 않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브리핑에서 매티스 장관은 현재로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더 이상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미북 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미래를 계산해 보겠다면서 협상을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 같은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북 협상이 교착을 맞은 상황에서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재개 카드를 꺼내 들며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장관의 발언과 관련하여 29일(현지시간) 현 시점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재정 지출을 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혔지만, 주한미군 철수 해프닝 때와 유사하게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한미관계의 향배와 관련돼 있다. 최근 한미관계는 한국의 북한산 석탄의 수입을 둘러싼 논란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대북제재에 저촉되는가의 여부 등을 놓고 난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번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한국 정부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미공조, 더 나아가 한미동맹에 이상 신호가 켜진 게 아닌가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하게 되면 북한 당국의 반발을 불러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29일 현재까지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자신들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공격적인 군사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미 국방장관의 이번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군사활동에 동조하여 한국 정부가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참가한다면 북한 당국이 어떻게 나올 지는 장담 못할 일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회귀하고 한반도를 감싸던 남북관계의 훈풍은 태풍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미북관계이다. 북한 당국은 현재에도 자신들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기지를 폭파하거나 폐쇄 중에 있으면서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있고, 미군 유해도 송환하여 미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그에 대한 보상조치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다가 미국 정부 자신이 결정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까지도 번복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나설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실제 이행될 경우, 즉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될 경우 남북, 미북, 한미 관계엔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될 경우 그것은 미국의 잘못된 정책결정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객관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북 핵협상에서는 북한 당국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어떤 가시적인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미국이 아무런 보상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미국 정부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서 선제적인 보상 조치를 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조치는 가시적이고 명백하게 북한 측 안보우려를 완화시켜 줬지만,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기지의 폭파, 폐쇄는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북 핵협상은 체제 안전 보장이 우선이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가 먼저냐 라는 예전의 레파토리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에서 지금이라도 벗어나자는 움직임을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설사 그것이 남-북-미 삼자관계에 일시적으로 충격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북한의 진지한 변화를 담보해낼 수 있다면 바람직한 정책 회귀가 아닐까.
북한 당국은 예전처럼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를 통해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김정은에게 신뢰와 우정을 보여줬지만 북한이 비핵화 여정으로 들어갈 조짐이 보이지 않자 점점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다. 지난 27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한 것도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지닌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점을 새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 움직임은 확정 여부에 따라 9월 중으로 예정된 3차 남북정상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모든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하게 얽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렸듯이 김정은이 핵시설 신고 및 비핵화 일정 제시라는 비핵화 조치의 초기 단계를 이행하기만 한다면 현재 교착상태는 정상 궤도를 찾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김정은과 북한 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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