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은 민족 분단의 상징적 존재다. 민족 분단은 북한 당국의 6.25전쟁 도발로 고착화했다. 이산가족 문제의 기원은 북한 당국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헤어져 살게 된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평생 가슴에 한을 품으며 살다 하나 둘씩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지연의 책임은 인간의 사무치는 그리움조차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북한 당국에게 있다.
추석 당일인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지금 이산이 70년인데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산가족 상봉 지연에 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첫째, 오랜 세월 동안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 남북 모두의 공통된 책임이라는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다.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는 건 한국 정부였다. 이 같은 제안에 대해 북한 당국은 쌀이나 비료 지원, 더 나아가 대북 제재의 해제 등을 요구하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심지어 2013년 9월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하다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이산가족 상봉을 3일 앞둔 상황에서 돌연 취소하기도 했으며 2015년 1월에는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이 5·24조치의 해제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도주의적 과제로 선정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그것을 자신들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한국 정부도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책임이 있단 말인가.
둘째, 대통령의 체제 인식에도 큰 문제가 있다. 문 대통령은 ‘남쪽 정부’ ‘북쪽 정부’란 말을 썼다. 마치 제3국 인사가 얘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를 때 북한은 6.25전쟁 때 미수복지역이고, 북한 당국은 한반도의 북측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체제 집단이다. 헌법을 준수한다면, 문 대통령은 ‘남쪽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라고 칭해야 하고, ‘북쪽 정부’가 아니라 ‘북한 당국’이라고 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 지연의 책임을 남북한에게 모두 돌리고, 북한 당국을 ‘정부’로 칭한 것은 대북 저자세 행태에 다름 아니다. 지나치게 북한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주의를 말하면서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 대통령의 발언은 5만여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이산가족 등록 현황을 보면 6월 30일까지 신청자는 13만 3306명이다. 이중 생존자는 5만 4403명으로 당초 상봉 신청자의 절반만 남아 있는 상태다. 생존자 중 70살 이상 고령자가 4만 6705명으로 85.9%를 차지했다. 이들도 곧 한을 품은 채 서러운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 김정은과 북한 당국은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자는 주장으로 한국인을 선동할 것이 아니라 가슴에 와 닿는 참다운 ‘우리 민족끼리’를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상봉의 정례화, 화상상봉, 서신교환, 묘지방문 등의 인도적 쟁점을 북한 당국이 조건 없이 먼저 제안할 때 우리는 그들의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진정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재의 이산가족 상봉 지연의 책임은 온전히 북한 당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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