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당국의 숨통을 죄어가고 있다. 지난달 21일 <노동신문>이 “공화국 역사상 가장 엄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경제적 고통을 타개할 수 있는 정도(正道)를 외면하고 있다. 대신에 안으로는 내핍과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밖으로는 온갖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며 제재의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자 <노동신문>은 유례없는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다시금 자력갱생하고 더더욱 자력갱생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굶어 죽고 얼어 죽을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의존은 인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약과 같다”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한 그램의 시멘트, 한 토막의 나무, 한 개의 못이라도 소중히 여기라”고 지시하며 허리띠를 바짝 조여 맬 것을 주문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버티며 제재의 고통을 이겨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내핍과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 당국의 주문은 위선적인 것이다. 기실은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고 불법 수단을 동원하면서 외부 경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올해 초 북한 당국은 러시아에 밀가루 10만 톤을 무상지원 해달라고 요청했고 러시아는 지난달 4일 북한에 구호물자로 5만 톤의 밀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6년에는 북한 당국이 중국 측에 3000만 달러를 받고 평년의 약 3배에 달하는 1500여 척의 중국 어선에 대한 조업권까지 팔아넘기기도 했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최근 외무성에 “국제기구에 우리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호소하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민들에겐 내핍을 강조하며 당국에선 외국에 손을 벌리는 행태가 자력갱생인가.
‘자력갱생’이란 용어 자체도 중국에서 차용한 것이다. 1950년대부터 중국공산당이 즐겨 구사했던 ‘자력갱생’이란 구호를 김일성 시대에 수용하여 주체사상의 지도적 지침 가운데 하나인 ‘경제에서의 자립’으로 구체화하면서 오늘날까지 쓰이게 된 것이다. 용어 자체도 ‘자력’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위선적인 북한 당국의 ‘자력갱생’은 급기야 불법적인 수단으로 변질됐다. 지난달 12일 공개된 ‘유엔 대북제재 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해상 환적을 통해 불법적으로 원유 수입과 석탄 수출을 감행하여 유엔의 대북 제재를 지속적으로 위반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남포항을 통해 금수 품목인 석탄을 밀수출하고 수중 송유관을 통해 유류를 들여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의 불법 환적은 물론, 선박 식별 장치까지 위조하는 수법을 동원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사이버 해킹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정찰총국 산하 해커들이 주도하여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아시아에서 최소 5차례에 걸쳐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해서 5억 7100만 달러(약 6458억 원)를 절취했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 위법을 저지르는 것이 ‘자력갱생’인가. 이렇게 절취한 외화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 같은 내핍과 위선으로도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 제재의 예봉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도 이 점을 인정하는지 역점 사업의 조기 완공을 연기토록 지시했다. 지난 6일 6개월 만에 원산을 찾은 김정은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까지 쫓기듯 ‘속도전’으로 건설하지 말고 공사 기간을 다음해 태양절(4월 15일)까지 6개월간 더 연장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대북제재가 장기화하면 그마저도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 난맥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내핍만을 강요하고 위선적인 ‘자력갱생’ 슬로건 만을 외치는 것으로는 고사 직전의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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