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리태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한 이래 3주가 지났지만 북한 당국의 움직임은 조용하다. 그간 북한 당국은 미국에 말 폭탄을 쏟아내며 압박을 극대화했지만 결국 허풍(bluffing)으로 밝혀졌다. 연일 계속되는 미국 정찰기들의 감시활동을 피해 대형도발을 감행하기는 불가능했고, 중국 눈치도 보았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연말에 개최 예정인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혹은 김정은의 2020년도 신년사에서 언급될 ‘새로운 길’도 허풍으로 가득 찬 위협적 언사에 다름 아닐 것으로 전망된다.
성탄절 이전 북한 당국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혹은 장거리 로켓 발사는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북한 당국의 말 폭탄에 대응한 미국의 반응은 군사적 압박으로 나타났다. 주말 내내 그리고 성탄전야와 성탄절 당일 미국은 공군 주력 통신감청 정찰기 RC-135W(리벳 조인트)와 지상감시 정찰기 E-8C 조인트 스타즈(J-STARS), RQ-4 글로벌호크, 코브라볼(RC-135S) 등 4대의 정찰기를 한반도 상공과 동해 상공에 동시에 띄워 북한의 도발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뿐만 아니라 미 국방부에선 현존하는 최강의 ICBM인 미니트맨-3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트라이던트-2, 그리고 B-2, B-52와 같은 스텔스 전략폭격기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은 26일(현지시간)에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일련의 무력과시 옵션을 사전 승인했다. 한반도 상공에 폭격기를 전개하는 것뿐 아니라 지상무기 긴급 훈련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말로 위협했다면 미국의 대응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이 대형도발을 강행한다면 ‘새로운 길’에 나서보지도 못할 것이다.
한편 지난 23일에 열렸던 한중정상회담에서 나온 시진핑 주석의 발언도 김정은에겐 도발을 자제해야 할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한반도 평화에 일관된 지지를 보낸다며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한은 북·미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가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튿날인 24일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는 한일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중국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삼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김정은이 ICBM 발사와 같은 대형도발을 감행했다면 시진핑 주석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해 어렵사리 회복된 북중 관계가 다시 소원해질 수도 있다. 중국이 수만 명의 북한 노동자를 송환해 버리면 북한의 외화벌이 수입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도 있다. 북한 매체에서는 한국이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며 연일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 당국 역시 중국의 심기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 메시지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북한 당국이 연말에는 대형도발을 강행할 수 있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최고존엄의 공언을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그 같은 도발을 강행할 경우 북한의 ‘새로운 길’은 첫걸음도 떼지 못할 것이다.
북한 당국이 스스로 규정한 ‘전략적 지위’는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길’에 나서겠다는 주장은 대미 압박용 허풍에 불과하다.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길’이란 핵보유국을 전제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중국, 러시아 및 반미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걸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경제적 고통의 책임을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리며 대미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선전선동의 강화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같은 길은 전혀 새롭지 않은 길이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긴장의 수위를 고조시키는 ‘언어 위협’은 이미 수차례 봐왔다. 설사 북한 당국이 그 같은 ‘새로운 길’을 걷는다 해도 그것은 장밋빛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미국 정부야말로 대북정책에 있어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속히 ‘자멸의 길’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제 곧 있을 노동당 전원회의나 1월 1일 신년사에서는 국제사회를 감동시키는 정말 ‘새로운 길’을 선언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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