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대미(對美) 시위가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 연말을 시한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가져오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미국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자 스스로 연말이라는 시한의 포로가 된 듯하다. 북한 당국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만만한’ 한국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벌이며 자신에게 유리한 비핵화 협상의 판을 짜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중심으로 한미동맹도 재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인질로 벌이는 북한 당국의 대미 시위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을 상대로 하는 북한 당국의 군사도발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두드러졌다. 지난 5월 4일 이후부터 11월까지 북한 당국은 12차례에 걸쳐 한국을 상대로 신형대구경조종방사포와 이스칸데르급 미사일(KN-23), 북한판 에이탬킴스((ATACMS) 전술지대지 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 신형 전술무기들을 시험 발사했다. 지난 10월 2일에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SLBM을 세 발 이상 탑재할 수 있는 3천 톤급 잠수함의 진수도 임박한 듯한 정황도 흘렸다.
급기야 북한 당국은 한국과 맺은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도발까지 감행하고 그것을 당당히 공개했다. 연평도 포격 9주기인 지난 23일 북한 당국은 서해 NLL(북방한계선) 인근의 창린도 해안포 부대에서 한국을 향해 해안포 사격 훈련을 감행한 것이다. 김정은이 직접 지도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의 일련의 군사도발은 겉으로는 한국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협상 상대인 미국을 의식한 시위로 볼 수 있다. 미국에 대해 연말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비핵화 협상의 대안을 마련해 오지 않으면 신형 전술무기 4종 세트뿐 아니라 SLBM, 그리고 아직까지는 최후의 카드로 아껴두고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압외교다. 이 강압을 관철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상대로 군사 위협을 가하고 있다. 북한의 계산으로는 이 같은 강압외교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전술은 하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이 아무리 한국을 위협하고 군사 도발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한미동맹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방위비분담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고,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유예를 둘러싸고도 한미 간에는 미묘한 갈등이 존재했다. 그 밖에도 미국은 한국에 보다 많은 동맹의 의무를 지우려 하고 있어 양국관계에 긴장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동맹의 가치를 금전적으로만 계산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한미관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한국을 위협하더라도 그에 대한 자신의 동맹 의무를 지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한국에 대한 인질 전술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많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북한 당국이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까지 내미는’ 굴종적인 대북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군사 도발의 강도를 점점 높이며 9.19 군사합의까지 노골적으로 위반했지만 한국 정부는 공식문서인 전통문(電通文)이 아니라 고작 팩스로 항의문을 보냈을 따름이다. 북한 당국의 군사 합의 위반 사실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항의하지 못하고 김정은의 심기를 살피며 그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을 팩스문을 통해 형식적인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비굴한 행태는 평화를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 북한 당국의 인질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군사적 강압의 주효성을 잘못 인식하게 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 당국은 한국을 인질로 삼아 미국에 대해 비핵화 협상의 양보안을 제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북한 당국은 ‘연말까지’라는 시한에 쫓기며 한국에 대한 군사 도발의 강도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냉랭해진 한미관계와 동맹을 ‘돈’맹으로 간주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학으로 볼 때 북한 당국의 인질 전술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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