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공세로 시작 비난으로 끝난 南北관계 ‘롤러코스터’

2011년 한 해 남북관계는 유난히 부침이 심했다. 북한의 대화공세로 막을 열었으나 “남한의 현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 국방위 성명으로 끝을 맺었다.


북한은 올 한해 천안함·연평도 도발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해 위협과 평화공세를 반복하는 화전(和戰) 양면술을 지속했는데, 그 곡선의 변화가 매우 잦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기별로 남북관계 변화 추이를 보면 ▲1~2월초 대화분위기 고조 ▲2월 예비회담 결렬에 따른 냉각기 ▲3월 대북인도지원 재개와 백두산 회담 진행 ▲5월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추진 ▲6월 비밀접촉 폭로로 재냉각기 ▲7월 식량(밀가루) 지원 허용 ▲8월 수해지원 물품 논의 및 금강산관광지구 남측 재산 법적처분 조치 ▲9월 통일부 장관 교체 ▲10월 사회문화교류사업 방북 및 개성공단 건축재공사 허용 ▲11월 국제기구 통한 정부 인도지원 재개 ▲12월 유연한 대북정책 비난 및 조문 논쟁, 대화중단 선언 등으로 요약된다.


北, 연초 민관(民官) 대화제의 파상공세, 천안함·연평도 희석노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대화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히며 적극적으로 대화 분위기 유도에 나서는 등 남북관계 개선 방향 쪽에 중심추를 뒀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 구애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중대 과업을 앞두고 외부지원이 절실하다는 내부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북한은 2010년과 올해 2년 연속 공동사설에서 ‘경공업 박차’를 강조했었다.


오래 초 북한의 대화제의는 민관을 가리지 않았다. 정부정당단체연합성명(1.5), 조국평화통일위원회(1.8)를 통해 ‘무조건적인 남북간 회담’ 개최를 제의한데 이어 10일에는 남북당국자회담 실무접촉, 적십자회담, 경제협력협의사무소 재개 등 3가지 대화를 동시다발로 제기해 왔다.


북한은 정당단체들을 대상으로 36건의 신년인사를 보냈고, 민간단체에 서안·팩스로 연합성명을 보내며 실행 지지를 호소했다.


북한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밝히며,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논의하는 회담과 비핵화 회담을 갖자고 역제의했다.


남북간 회담을 위한 팽팽한 기싸움이 진행되다가 결국 2월 8일부터 이틀간 예비회담 성격인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렸다.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다룰 의제와 급, 일정 등을 논의했지만 북한이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넘어설 해법을 갖고 나오지 않아 결국 결렬됐다. 북한은 회담 종료 2시간 만에 ‘역적패당’이란 거친 표현을 써가며 남조선 당국을 비난했다.


정부 당국간 회담이 쉽게 열리지 않자 북한은 일본 후쿠시마 지진 발생 이후 관심이 높아진 백두산을 대화 채널 확보에 적극 활용했다.


1차 백두산 화산 전문가 회의는 3월 29일 남측지역인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열렸는데, 회의에서 북측은 “일본에서 지진이 있은 다음에 우리 지하수 관측공에서 물이 약 60㎝ 출렁이고 샘물에서 감탕이 나오는 현상이 많았다”고 밝혀 관심을 유도했다.


이후 4월 12일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2차 회의가 진행됐지만, 당시 합의됐던 5월초 남북 학술토론회, 6월 중순 백두산 현지 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적극 제기, 北 ‘비밀접촉’ 폭로로 반발


이후 5월 9일부터 중국 베이징 등 제3국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남북간 ‘비밀접촉’이 세 차례 이뤄졌다.


첫 비밀접촉이 있던 날 이명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와 비핵화에 대해 확고히 합의한다면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기대한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접촉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외교관례를 깨고 6월 1일 협상 내용을 폭로했다. 북한은 남한이 3차례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대해 ‘남측이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내놓자고 했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돈봉투’ 전달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비공개 접촉은 사실이라고 밝히면서도 비밀접촉은 천안함,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분명한 시인.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 내기 위한 것이 핵심내용이라고 반박했다. ‘비밀 접촉’ 폭로는 남북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그러다 올 여름 태풍 메아리와 두 차례의 집중호우로 북한에 수해가 발생, 우리 정부는 8월 3일 50억원 규모의 수해 물자 지원을 제의했다. 지난해 대북 수해지원이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으로 이어진 만큼 이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제의에 대해 북한은 ‘식량과 시멘트 등의 물자와 장비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 우리 정부는 전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영·유아용 영양식과 초코파이, 라면, 의약품 등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우리 정부는 9월 15일 1차 지원분을 경의선·동해선 육로를 통해 전달하겠다고 통보했지만,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히지 않아 결국 수해지원 제의를 철회하고, 기제작된 영양식 83만 개 전량은 수해피해를 입은 엘살바도르 등 제3국에 전량지원됐다.


북한은 7월 29일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에 따라 남측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밝히고 3주 내 입장을 정리해 금강산에 들어 올 것을 통보했다. 이후 8월 22일 실제 조치를 취하면서 ‘체류인원은 72시간 안에 나가라’고 밝혀 현대아산 직원 등 14명이 모두 철수했다.


류우익, 5·24조치 사실상 철회한 ‘유연성’ 발휘, 北은 기만극


우리 정부의 통일부 장관 교체는 남북관계 분위기 전환을 노린 카드로 해석됐다. 지난 9월 19일 취임한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자신의 이름을 ‘류연성’이라 표현할 정도로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해 남북관계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류 장관 취임 이후 정부는 개성공단 내 소방서 및 응급의료시설 건설, 개성시와 개성공단을 잇는 도로 개·보수 작업, 개성공단 출·퇴근 버스 회차장 단장 등의 조치를 취했다. 특히 5.24대북조치로 그동안 중단했던 민간인 방북 문제에 대해 종교인 방북 허용을 시작으로 개성 만월대(옛 고려 왕궁터) 발굴사업 재개 실무협의 승인했다.


이후 유엔아동기금,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통해 정부의 대북인도적지원을 재개하는 등 사실상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따라 취해진 5·24조치를 무력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북한은 ‘유치한 말장난’ ‘기만극’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제기, 일절 호응하지 않았다.


김정일 사망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정부차원의 조문단을 보내지 않기로 하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몽헌 전 회장 유족의 답례 방북 조문만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2월 26~27일 방북해 조문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 여사와 면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강조하면서 잘 진행됐으면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조문정국이 끝난 직후에는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의 조문태도를 문제삼아 “이미 선포한대로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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