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후 5년 만에 대한민국 명인 3호에 선정됐다는 전화 한통에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나름 씩씩하게 버텨왔어요. 하지만 2016년 또다시 한국요리경기대회에서 금상과 명인(名人)증서를 받던 그날, 처음 인간다운 삶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니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죠”
지난달 26일 ‘세계음식문화연구원’과 ‘한국푸드코디네이터협회’ 심사로 북한전통음식 명인으로 당선돼 대한민국 명인 3호로 선정된 이명애 북한민속음식연구원 원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시원시원하고 정열이 넘치는 이 원장의 눈빛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달인같은 인상을 줬다. 그는 2011년 한국에 입국했다.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오직 앞만 바라보며 살아 온 그에게 눈물도 사치였다. ‘양반찹쌀순대식당’을 운영해 온 이 원장은 밥상으로 남북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품고 음식 연구에 몰두했다.
2012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조리사대회인 ‘2012 한국국제음식박람회’에 참가해 탈북자로서 처음 한식요리경기에 당선된 적이 있는 이 원장은 2013년, 2014년, 2016년 연일 민족전통요리경기대회 금상을 받았다.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지만 한순간도 정진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대한민국 명인대열에 들어서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십 년의 경력과 박사학위를 가진 남한 사람들과의 경쟁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는 것이 이 원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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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식당이나 운영하면서 돈만 많이 벌까하고 좌절도 했지만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어 탈북자로서 첫 전통음식 명인에 도전하게 됐어요”라면서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고 북한의 음식과 남한의 음식접점을 잘 살려 통일밥상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 탈북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12월에는 대담하게 ‘진미가푸드 도시락’을 인수받았어요. 북한순대와 함께 금강산도시락으로 한국시장에 당당히 설수 있는 것이 제가 할 일 아닐까요. 식당을 운영하는 모든 탈북사장들이 기 죽지 말고 세계요리경기대회에 당당히 나서자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원장 인터뷰 전문]
-‘양반찹쌀순대집’을 개업할 때 우리가 만나 인터뷰한 지 1년 반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그때가 2014년 11월이었으니까 일 년 반 정도 됐다. 길지도 않은 이 시간이 나에게는 십년 이상 지난 느낌이다. 해마다 진행되는 요리경기대회에 출품할 전통음식을 연구하느라 하루밤도 편하게 잔 적이 없다. 봄꽃 구경이나 단풍구경 간적도 없고 모든 시간은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끊임없는 연구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하면 북한전통 음식을 살릴 수 있을까. 재료 하나, 요리기술 하나 그대로 살리며 출품요리를 만들었다.
피나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16년도 진행된 요리경기대회에는 북한 메추리 요리를 살려 그대로 출품했다. 메추리에 잣, 깨, 호박씨를 넣어 영양을 유지하면서도 눈 맛도 이쁘게 그대로 기름에 튀겨 올렸더니 참가자들이 최고의 맛이라고 평가해주었다. 금상을 받았다. 음식에는 확실히 국경이 따로 없다. 입맛으로 통일되는 순간이 바로 요리경기대회다.
이렇게 되니 지금은 통일부 산하 하나원 수강생들의 음식배우기 학교 강사로 선정됐다. 전통요리와 한국요리 음식전수를 하나원 학생들에게 매달 교육할 때마다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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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명인이 됐다. 소감은?
기쁘기 보다는 숭엄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올해 몇 명밖에 선정 안 되는 명인대열에 탈북자가 된 것만 해도 역사에 기록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년 전 처음 도전했고 계속 탈락됐다. 탈북자가 명인이 될 수 있을까 좌절도 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향을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사명감으로 한국정착을 해나갈 때 살아가는 진미를 느끼는 것 같다. 90명의 음식 박사들이 심의하는 협회에서 명인에 선정됐다는 전화한통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고마웠던 순간을 피부로 느낀 것 이다. 10월에는 명인들만이 입는 유니폼이 나온다. 북한식으로 보면 장성(장군)복이나 다름없다. 음식요리의 기초를 알려주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고향에 묻혀있는 어머니 생각에 그날에 또 울 것 같다
-지금은 도시락 업체를 인수하셨는데 경영이 힘들지 않나?
지난 12월 ‘진미가 푸드 도시락’업체를 인수했다. 경쟁력 있는 수많은 도시락업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떨렸다. 재정도 부족하다. 특히 영등포 지역에는 도시락업체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직 순수한 맛으로 차별 있는 음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반찬요리를 바꾸었다. 오이도 돌로 물기를 꼭 짜서 아삭아삭 소리가 나도록 북한식으로 양념을 했다. 고객들의 입은 최고의 시험관이다. 음식 맛이 다르다는 평이 연일 들어왔다.
단 몇 달 사이 공공 단체들이 도시락을 주문했고, 최근에는 서울대학교에서도 전문 도시락을 주문했다. 현재 한 달 매출이 2천 500만~3천만 정도 된다. 최고의 식자재를 쓰고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나면 이윤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대출 한번 받지 않고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은 서울시 호서 직업전문학교에서 식품조리학과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탈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세상에 날아가는 공돈을 잡는 행운이란 없다. 오직 자기 노력이다. 한국에 탈북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 하는 순간, 인생은 실패한다. 무조건 자기를 계발하라. 쉬지 말고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라. 자기만의 할 수 있는 능력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하늘도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