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존엄성, 국법으로 세우자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 가 북한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가입한 한국인 명단을 공개함에 따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체제에 동조하는 행위를 해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1996년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되었을 때, 그리고 그에 앞서 1974년 북한의 대남 침투용 땅굴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 버금가는 파장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잠수정이 한국의 영해를 무시로 드나들면서 우리체제를 위해하는 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땅굴을 통해서는 언제든 기습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적화통일 실행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번 해킹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체제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은 되었지만 사이버 상에서 구체적인 명단이 밝혀짐에 따라 종북세력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명단 자체의 신뢰성, 그리고 명단속의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를 정확히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권 침해 소지가 발생하고, 또 정치적으로도 ‘매카시즘’과 같은 광풍을 불러올 여지도 있다. 이 때문에 진위를 가리는 작업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저술한 ‘역사의 연구’에는 국가안보를 연구하는 이들이 새겨야 할 대목들이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그는 인류 공동체 내부에서 발현되는 ‘활력(elan vital)’에 주목하고, 그러한 에너지는 대체로 외부 환경에서 오는 위협이 클수록 그 강도 역시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컨대 외부의 침략에 굴복하여 크게 패망한 적이 있거나, 오랫동안 위협에 직면한 공동체에서 그러한 활력이 분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바로 역경을 이겨 내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도약, 그리고 이스라엘과 한국이 보여주는 생존방식을 보면 토인비의 통찰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도약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국력의 지수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유엔에서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에서도 12위에 오른 것을 보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실은 북한의 끊임없는 군사도발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도 민주화의 진통을 극복하면서 이루어낸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활력은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우리나라만큼 활력이 넘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어떤 보고서에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게 점쳐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활력이 이처럼 높은 것은 국가 내부의 적응체제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이는 지도층의 리더십에서부터 국가의 안보체제, 그리고 국민의 응집력과 의지 등 3박자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안보체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고 본다. 한국의 안보체제는 과거 ‘반공시대’에 골격이 갖추어졌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현시점에서 한국의 안보체제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복잡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특이한 부분이 돌출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외국의 실태와 비교해도 그렇고, 또 사회적으로도 폐지여론이 줄곧 있어 왔기 때문에 정작 이법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한국 사회를 갈등상태로 몰아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 법은 근래에 와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마비상태에 있으므로 그 정당성 여부가 정치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될 소지도 있다. 이 문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정식으로 심의해야 할 일이고, 필요하다면 국민투표에라도 붙여서 정치적 심판을 받아볼 수도 있다. 문제는 현행 법체계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이 제대로 적용 또는 실행되지 못하는 실태에 있다.


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공안기관이 법치의 원리를 무시한 것이며, 이는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법대로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외면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며, 만일 그런 소신이 없다면 공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 신임 국가정보원장이 인사 청문회에서 말한 것처럼 공직자는 정권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서 봉직한다고 했을 때의 그 조국에 해당하는 가장 일차적인 요건이 바로 법치주의 원리에 부응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정당하며, 다음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첫째,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제도적 장치로 그 합법성이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1948년에 처음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9차례 개정되면서도 지금까지 존치되어 왔고, 국가보안법 자체도 7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특히 제7차 개정은 1991년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때를 정치 민주화의 기점으로 간주한다면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았다는 뜻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업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 북한체제는 이미 한민족의 염원과 정치적 정통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자국민의 삶과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실패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체제는 정통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 난지도 오래되었고, 한민족 모두를 공멸에 이를 위험을 볼모로 삼아 오직 김일성 1인의 혈연통치를 수호하는데 전전긍긍하는 나라로 변모되었다. 대한민국은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체제전복을 꾀하는 세력은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체제를 이끄는 현재의 주도세력은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한민족의 공통 가치는 물론 국제사회의 규범에도 이탈하는 체제이므로 이 세력에 동조하는 인사나 집단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정당하다고 본다.


셋째, 대한민국이 한반도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체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그동안 북한체제가 벌여왔던 도전행위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으며, 이를 막아내기 위해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더욱 가공할 일은 북한체제가 그러한 도발행위를 일삼는 동안 늘 사실을 은폐하거나 기만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지하는 이상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에 맞서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안보적으로 합당한 것이다.


넷째, 국가보안법을 정권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작동시킬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민주화가 진척되기까지 국가보안법은 민주화 투쟁 인사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법의 원래 취지가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작동되었던 사례가 있었고, 그래서 국가보안법의 이미지와 정체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법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북한체제의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그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원래 취지와 목적이 정당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국가보안법이 지향하는 원래의 취지대로 작동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진척도가 수준 높게 이루어진 오늘의 시점에서 이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우리사회 여론이 국가보안법을 정권안보 차원에서 활용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또 대한민국은 세계 속의 일원으로 개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종 국제규범과 인권기구의 규제활동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이다.


정권안보에 급급한 북한체제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를 상대로 핵무기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은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데에도 전제조건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한국정부가 대북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더 강조되어야 한다. 북한의 대남 전복활동 의지를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북한의 대남 전복활동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국법에 따라 심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굳이 이번에 드러난 사건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너뜨리려고 활동하는 세력이 있다면 법으로 다스리는 게 옳다. 그 처리과정 또한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차제에 한국의 공안기관은 체제수호 임무를 엄정하게 수행함으로서 그동안 잃었던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조국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드높여 주기를 염원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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